오늘을 건너가기에 가장 단정한 시작이라 믿으며 순대국밥을 끓였습니다. 아침과 점심의 경계가 흐릿한 시간 부엌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빛이 아직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겨울이 오면 김장을 담그듯 나는 사골국을 푹푹 고아 냉동실에 나누어 두는데 오늘은 그중 하나를 꺼내 냄비에 부었습니다. 국이란 늘 그렇게 준비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미리 고아 두지 않으면 정말 필요할 때는 이미 늦어버리니까요.
살다보면 뜨거운 국물이 생각나는 날이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속이 헛헛해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음이 비어 있는 날입니다. 후후 불며 목젖이 열렸다 닫혔다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야만 하루가 넘어갈 것 같은 날 말입니다. 그런 날에는 차가운 음식도 멋을 낸 요리도 필요 없습니다. 뜨거운 국물 하나면 됩니다. 그 뜨거움이 오늘을 밀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사골국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 내장과 간을 넣습니다. 국물이 다시 한 소큼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기다린다는 건 늘 쉽지 않습니다. 성질이 급할 때는 펄펄 끓기도 전에 냄비 뚜껑부터 여닫습니다. 괜히 건더기를 국자로 휘휘 저어보기도 합니다. 국물이 갑자기 맛이 날까 봐서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니 삶에서도 이런 일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어 웃음이 납니다. 기다려야 할 시간에 조급해지고 손대지 않아도 될 것을 괜히 건드려 놓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일들 말입니다.
내장이 국물에 맛을 내는 동안 들깨를 볶습니다. 들깨가루는 사지 않습니다. 산패가 빠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직접 볶아 갈아 넣는 그 짧은 수고가 국밥의 성격을 바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작은 손절구에 볶은 들깨를 넣고 찧습니다. 절구질을 할 때 나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리듬이 일정해서일까요. 쿵 쿵 쿵. 그 소리 사이에서 생각은 줄어들고 몸의 감각만 또렷해집니다. 새우젓도 덜어 둡니다. 새우젓은 늘 적당히가 어렵습니다. 짜기도 하고 깊기도 하고 너무 앞서 나서면 국물 전체를 지배해 버리니까요. 삶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없어서는 안 되지만 늘 조심히 다뤄야 하는 존재 말입니다.
국물이 다시 끓으면 순대를 넣습니다. 순대는 미리 넣지 않아야 터지지 않습니다. 이 간단한 원칙을 나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배웠습니다. 좋은 마음도 좋은 말도 너무 일찍 꺼내면 터져버린다는 것을요. 순대는 잠시 아주 잠시만 국물에 담가야 합니다. 그 짧은 시간이 순대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게 해줍니다. 순대를 끓이는 동안 나는 대접을 뜨거운 물로 토렴해 둡니다. 차가운 그릇에 뜨거운 국물을 부으면 국물도 금세 식고 맛도 떨어집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어떤 온기가 닿아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세 식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릇이 충분히 뜨거워지면 밥을 덜어 넣고 국물을 대여섯 번 토렴합니다. 밥알이 국물을 빨아들이며 간이 배어갑니다. 무엇보다 밥알이 보드러워집니다. 나는 이 과정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밥과 국물이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드는 시간. 급하지 않고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는 순간입니다.
뜨거운 국물이 필요했던 날들은 대개 이유를 묻기 어려운 날들이었습니다. 무엇이 힘드냐고 누가 묻는다면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오늘을 그냥 넘기면 안 될 것 같은 예감만 남아 있던 날들 말입니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먼저 식어버린 날 저녁이 오기 전부터 이미 하루를 다 쓴 것 같은 날에는 차가운 음식이 도무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날이면 나는 국을 끓였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았고 특별한 약속이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오늘을 통과하기 위해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내 안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국물이 입안에서 목젖을 밀고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곤 했습니다.
혼자 먹는 밥은 대개 빨랐습니다. 숟가락을 씹듯 움직이며 생각이 국보다 먼저 식어버리기 전에 그릇을 비워야 할 것만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국밥 앞에서는 속도가 달라졌습니다. 후후 불지 않으면 먹을 수 없었고 그 사이 숨이 고르고 그 사이 마음도 잠시 멈췄습니다. 어떤 날은 국을 끓이다가 불을 줄이지 못해 넘친 적도 있습니다. 사골국이 가스레인지 위로 흘러내려 바닥에 얼룩을 만들던 날 나는 국자를 든 채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닦아야 하는데 왜인지 바로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삶도 그렇게 넘칠 때가 있다는 걸 그날은 이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아픈 날에도 국은 끓였습니다. 몸이 축 늘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국을 끓인다는 건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최소한의 증거였습니다. 국을 먹고 나면 당장 나아지는 것은 없었지만 오늘을 버텼다는 표식 하나는 남았습니다. 그 표식이 쌓여 다음 날을 부르는 힘이 되었습니다.
누가 찾아왔던 날이 있었습니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고 미리 예고된 방문도 아니었습니다. 초인종 소리가 나고 문을 열었을 때 그 사람은 잠깐 망설이는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괜히 미안해 보이는 표정이었고 나는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부엌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말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괜찮냐고 묻지도 않았고 왜 왔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냄비를 꺼내고 불을 켜고 냉동실에서 사골국을 꺼내는 동안 그 사람은 현관에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들어왔습니다.
그날 나는 사람을 마주하는 방식보다 국을 끓이는 방식에 더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어색함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보다 국물이 언제 끓기 시작하는지가 더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말은 엉킬 수 있어도 국은 순서를 지키면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사골국이 냄비에 부어지고 불 위에서 천천히 온도를 올리는 동안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는 아무 설명 없이 국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습니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찾아왔을 때 나는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국을 끓이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괜찮냐는 질문보다 뜨거운 것을 내어놓는 일이 내 방식의 환대라는 것도요. 국이 끓기 시작하자 그제야 숨이 고르게 쉬어졌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이 시간이 헛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 자리가 견딜 만해졌습니다.
그 사람은 국이 끓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냄새가 좋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 말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국을 먹었고 국이 식을 때까지 앉아 있었고 그 사람이 떠난 뒤 나는 다시 냄비를 씻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이상하게도 단정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찾아왔을 때 국부터 끓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살림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붙잡는 말보다 사람을 머물게 하는 온기를 먼저 꺼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지금도 오늘이 조금 버거워 보이는 날에는 괜히 냄비를 꺼냅니다. 사골국이 없으면 물이라도 올립니다. 끓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마음도 언젠가는 다시 끓어오를 것 같아서 아니 최소한 식지 않은 채로 오늘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토렴한 밥 위에 건더기를 담고 순대를 올린 뒤 국물을 붓습니다. 벌써부터 침이 고입니다. 다 되었다면 그 위에 쪽파와 부추를 얹어야 하는데 먹다 알게 되었습니다. 아차차 부추를 얹지 않았다는 것을요. 부추는 두 단이나 사다 놓고 말입니다. 웃음만 나는 아침입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자주 빠뜨리고 자주 놓치며 삽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여전히 허술한 인간입니다.
청양고추를 이겨 넣고 새우젓을 얹고 들깨가루를 뿌리고 고춧가루를 조금 더하면 얼큰한 순대국밥이 완성됩니다. 숟가락을 들기 전 잠시 김을 바라봅니다. 국에서 나는 김은 늘 사람을 멈추게 합니다. 오늘도 잘 버텨보자라는 말 대신 오늘은 이 한 그릇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순대국밥을 끓인다는 것은 결국 나를 대하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서두르지 말 것 너무 간섭하지 말 것 필요한 것은 미리 준비해 둘 것 그리고 빠뜨린 것이 있어도 웃고 넘어갈 것. 삶은 늘 완벽하지 않지만 국밥은 그런 삶을 잠시 안아줄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국을 먹으며 하루를 건너갑니다. 아주 단정하게 그러나 결코 대단하지 않게. 그게 내가 배운 삶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