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동이 일상이 되고 그것이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내겐 동생이 있다. 동시에 내 새끼 같은 존재다. 그건 바로 검은 고양이와 삼색 고양이.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애기들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래봤자 그릇을 닦고 사료를 부어주고 물그릇에 물을 부어주고 화장실을 씻어내 새로운 모래를 채워주는 게 고작이지만, 힘없이 장난감을 흔들면 다가와 부비는 몸짓에 사르르 녹아버리고 만다. 작은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어주면서 우리 귀염둥이, 우리 애기, 라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됐다. 매번 못된 습관만 가지다가 처음으로 좋은 습관을 길러준 게 다 야옹이들 덕분이다.
지난날 아침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더위를 먹은 할머니께 식사는 드셨냐고. 또는 산더미 같이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 넉살 좋은 햇볕에 빨래를 널었다. 그러다 벌이 들어와 한참을 부산스럽게 벌을 내쫓았고 곧이어 더위를 먹은 나는 에어컨을 틀은 거실에서 시원함을 만끽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일상 중 어느 무엇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꼽자면 더위를 해결하는 시원함이 있듯 원인과 그것의 해결방안이 뚜렷했다. 똑같은 일상이지만 달랐다. 오늘은 무엇을 실패해도 다시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됐다. 그 덕분에 간만에 소설을 썼고 지금 이 일기를 쓰고 있다.
길어진 손톱 탓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여전히 불편했다. 그럼에도 십 분도 가지 못했던 집중력이 한 시간을 넘어섰다는 건 내게 큰 변화였다. 그 변화를 깨닫고 나서야 나는 실로 오랜만에 내게 만족을 느꼈다. 직장을 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알바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미 많이 쉬지 않았냐며 물을 테다. 인정한다. 나는 많이 쉬었다. 그런데 나는 쉬고 싶어서 일을 구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이 사실을 인지한 지가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을 다니기도 했고 조금이나마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알바를 했었다. 그 생활을 이어가면서 꾸준히 생각해 낸 결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였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딱히 특이한 점 하나 없는 내가 우연히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또, 우연히 다니는 알바와 직장마다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그만두지 말라며 매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겐 그 모든 게 모순으로 다가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직까지 알 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내가 배우는 것이 무엇인가. 시간만 헛된 게 아닌가. 따위의 고집이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정말 무엇일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분지어야 할까. 남이 바라는 직장을 다녀야 할까, 내가 바라는 직장을 다녀야 할까. 나는 이것을 좋아하고 있는 게 맞는가.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여태껏 나의 선택을 방해했다. 그로 인해 도출한 답은 '나는 겁이 많다.' 라는 사실이었다.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고 취미를 즐겨도 찝찝한 죄책감이 따라붙었는데 그것을 신경 쓰느라 몰랐던 나의 소소함이 나름 내 기분을 쏘쏘하게 해 주었다. 다음 일기를 쓸 때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내가 됐기를 바라면서 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