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시장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지배하는 냉혹한 시장이다.
기업은 자신들이 원하는 부품의 정확한 규격과 제원을 공개하고, 구직자는 자신이 그 규격에 딱 들어맞는 완성품임을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재단한다.
하지만 이 당연하고 투명한 시장의 논리가 유독 장애인 고용 앞에서는 기묘한 안개 속에 휩싸인다.
기업들은 늘 인재를 찾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한다.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그들의 변명은 얼핏 들으면 무척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주 오래되고 지루한 게임이 숨어 있다.
정답을 미리 정해두고도 절대 힌트를 주지 않는 대답 없는 스무고개.
이것은 채용 공고라는 이름의 속 빈 강정 앞에서 끝없는 스무고개를 풀다 지쳐버린 한 직업재활 상담사와, 그 기만적인 게임의 판을 엎어버리기로 결심한 김경훈의 어느 건조한 봄날 오후의 기록이다.
1. 서류 더미 앞의 상담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지사의 한 회의실.
따스한 봄 햇살이 창문을 넘어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회의실 안의 공기는 마치 한겨울처럼 무겁고 차가웠다.
커다란 타원형 테이블 위에는 수십 장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고, 그 서류 더미 한가운데에 한 여성이 머리를 감싸 쥐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최민지.
꼼꼼하고 열정적인 직업재활 상담사였다.
김경훈은 장애인 직무 환경 개선 자문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녀와 마주 앉게 되었다.
민지 선생님, 한숨 소리가 너무 커서 복도 끝에서도 들리겠습니다.
바닥이 꺼지겠어요.
김경훈이 지팡이를 옆에 내려놓으며 가볍게 농담을 건네었다.
아, 박사님 오셨어요.
죄송해요.
제가 지금 며칠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서요.
최민지가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피로가 배어 있었다.
이 서류들 들리시죠? 그녀가 이력서 뭉치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 지역 대기업 세 곳에서 장애인 특별 채용 공고를 냈어요.
일반 사무직이랑 데이터 관리 직무였죠.
우리 기관에서 정말 피땀 흘려 교육한, 역량이 아주 뛰어난 친구들을 선별해서 넣었거든요.
근데 오늘 아침에 전부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사유는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함 이라네요.
이. 채용 공고라는 이름의 미스터리
김경훈은 턱을 괴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죠.
최민지가 열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기업체에 요구하는 직무에 딱 맞는 장애인을 찾는 거, 쉽지 않은 일 맞아요.
장애 유형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업무 역량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죠.
저도 현장에 있으니 그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박사님, 제일 화가 나는 게 뭔지 아세요?
뭔가요.
자기들이 요구하는 직무가 대체 무엇인지, 어떤 기초 조건이 필요한지는 한 줄도 안 적어놓는다는 겁니다.
최민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슨 자격증이 필요한지, 어떤 엑셀 함수를 다뤄야 하는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아무것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아요.
그래 놓고서는 막상 지원하면 적합한 사람을 못 찾았다고 도돌이표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합니다.
요구하는 조건이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걸 달성해서 오라는 건가요?
김경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지도 안 알려주고 내비게이션 없이 알아서 찾아오라는 격이군요.
맞아요.
기업체도 이제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장애인 직원을 선발하기 위한 기초 조건을 먼저 알려줘야죠.
학력이 문제라면 우리 친구들이 대학 진학에 열을 올리면 될 일이고, 다른 역량이 문제라면 그 역량을 갖추기 위해 훈련하면 됩니다.
장애가 없을 것이라는 그 폭력적인 조건만 제외한다면, 장애인들도 역량만 있으면 기업이 원하는 조건들을 다 충족해 줄 수 있다고요.
삼. 바리스타의 굴레
최민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컵을 만지작거렸다.
커피가 다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기업체가 적합한 조건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직무에 맞는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 건 완벽한 모순입니다.
이래 놓고 책임을 다했다고 하겠죠.
직업훈련을 한다고 쳐도, 기업이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매번 똑같은 훈련만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맨날 바리스타 교육만 하는 거군요.
김경훈이 정곡을 찔렀다.
최민지가 씁쓸하게 웃었다.
네, 맞아요.
그나마 시장에서 조건이 제일 명확하게 알려진 게 바리스타니까요.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이 기업체에 적합해지려면 그 조건에 맞는 직업훈련을 해야 하는데, 조건을 모르니 무작정 커피 내리는 것만 시키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큰 인력 낭비고 희망 고문인가요.
기업들은 제발 스무고개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사. 스무고개의 결말
김경훈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민지 선생님.
기업들이 기초 조건을 몰라서 안 적는 게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일부러 안 적는 거죠.
명확한 기준을 세워버리면, 그 기준을 충족한 장애인이 지원했을 때 무조건 뽑아야 하잖아요.
적합자를 찾지 못했다는 모호한 문장은 뽑기 싫을 때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면죄부입니다.
그때, 최민지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메시지를 확인하던 그녀의 숨소리가 멈칫했다.
맙소사.
왜 그러십니까.
그녀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에 불합격 통보를 보낸 대기업 인사팀에 있는 제 대학 동기한테서 개인적으로 문자가 왔어요.
진짜 불합격 사유가 뭔지 아세요? 우리 지원자들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대요.
반전이군요. 그럼 뭡니까.
그 회사 구내식당이 휠체어 접근이 안 되게 턱이 높게 설계되어 있대요.
그리고 장애인 화장실도 임원실 층에만 있고요.
인사팀에서 그거 개보수 비용 품의 올리기가 눈치 보이니까, 그냥 아예 뽑지 말자고 윗선에서 커트한 거랍니다.
그래 놓고 겉으로는 직무 적합성 운운한 거예요.
김경훈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이런.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인재를 품을 적합한 건물을 찾지 못한 거였군요.
건축의 실패를 인력의 실패로 둔갑시키다니, 대단한 아키텍처입니다.
최민지는 분노로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제 장애계의 인내심도 한계입니다.
더 이상 스무고개는 안 해요.
저는 내일 당장 그 회사에 정식 공문을 보낼 겁니다.
당신들이 요구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구내식당 턱을 언제 깎을 것인지 정직하게 답하라고요.
아주 훌륭한 반격입니다.
김경훈이 지팡이를 고쳐 쥐며 일어섰다.
조건 불일치가 아니라 환경 불일치라는 걸 세상에 알려야죠.
저도 문헌정보학자로서 공문 작성에 힘을 좀 보태드리겠습니다.
아주 매운맛으로 말이죠.
오. 주석 스무고개의 아키텍처
제목, 스무고개의 아키텍처, 혹은 정답 없는 게임.
기업은 장애인 고용을 스무고개 게임처럼 대한다.
질문할 기회는 주지만, 정답은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장애가 없을 것이라는 유일한 진심을 감추기 위해, 그들은 직무 적합성이라는 화려한 장막을 친다.
하지만 오늘 그 장막 뒤에 숨겨진 진짜 이유를 보았다.
그것은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사회의 물리적 턱과 편견이라는 구조적 무능이었다.
결론, 정답 없는 스무고개 판은 엎어버려야 마땅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조건을 명확히 묻고,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환경의 조건을 당당히 들이밀어야 한다.
채용은 구걸이 아니라 정당한 거래니까.
내일 최민지 상담사와 함께 쓸 공문에는 특수부호를 몽땅 빼고 아주 직설적인 문장만 담아야겠다.
돌려 말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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