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라는 단어는 배부른 자들이 만들어낸 나약한 위선일 뿐이다. 햇빛이 닿지 않는 지하의 가장 깊은 곳에는 오직 썩은 탐욕과 생존을 위한 악취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빛을 잃은 나를 동정하며 무력한 존재로 여기지만, 완벽한 어둠 속에서 진실의 이면을 찢어 발기고 가장 값진 살점을 뜯어내는 것은 눈먼 사냥개인 나 엘리야뿐이다. 나의 세계는 시각이 차단된 대신 극한으로 벼려진 후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감각의 제국이다. 내 발치에는 이 위험한 사냥의 완벽한 공범이자 충직한 길잡이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탱고가 축축한 콘크리트 바닥의 진동을 느끼며 엎드려 있다. 우리는 부패한 악당들이 숨겨둔 가장 거대한 돈다발을 가로채어 사랑하는 보보와의 평화로운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이 끔찍한 무덤으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수십 년 전 노선이 변경되며 영원히 버려진 지하철 폐역의 승강장이다. 붉게 녹슨 에스컬레이터는 거대한 짐승의 뼈대처럼 멈춰 있고, 타일이 떨어져 나간 벽면에서는 썩은 지하수가 뚝뚝 떨어지며 서늘한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의 청각은 그 물방울이 부딪히는 미세한 메아리를 해독하여 이 거대한 폐역의 구조와 숨겨진 환풍구의 위치까지 머릿속에 완벽한 입체 지도로 그려내고 있었다. 오래된 쇳가루의 비릿한 냄새와 곰팡이 핀 쥐들의 배설물 악취가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머나먼 지상에서 현역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두꺼운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 묵직한 진동이 나의 구두 밑창을 간지럽혔다.
나를 이 축축한 지하로 끌어들인 자는 도심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 황 보스였다. 그는 오늘 밤 이 폐역에서 해외 밀매 조직과 대규모 불법 무기 거래를 앞두고 있었다. 추적 불가능한 최신형 자동소총과 군용 폭약들을 수백억 원어치의 무기명 채권과 맞바꾸는 위험한 거래였다. 황 보스는 거래 현장에 경찰의 잠복이나 상대 조직의 함정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각을 가진 눈먼 사설탐정을 인간 탐지기로 고용한 것이다. 그는 나에게 주변의 미세한 소리나 냄새를 감시하라고 지시하며 거액의 수고비를 약속했지만, 나는 그 얄팍한 푼돈 따위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황 보스의 수하가 들고 있는 저 무거운 알루미늄 가방 속의 무기명 채권 다발뿐이다.
멀리 어둠 속에서 녹슨 선로의 자갈을 밟는 불규칙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무기를 팔러 온 해외 마피아 조직의 브로커들이었다. 발소리의 무게와 보폭으로 보아 앞장선 자는 아주 거구의 남자였고, 그 뒤로 짐을 든 세 명의 수하가 따르고 있었다. 그들이 승강장 중앙으로 다가오자 나의 예민한 후각은 그들이 뿜어내는 짙은 체취를 낱낱이 해부하기 시작했다. 브이오디오케이카 독주의 알코올 냄새와 값싼 가죽 재킷의 냄새,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총기 손질용 특수 윤활유의 매캐한 화약 냄새가 공간을 채웠다.
황 보스는 거친 목소리로 물건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무거운 나무 상자가 승강장 바닥에 둔탁하게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고, 쇠지렛대로 상자의 뚜껑을 여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폐역을 울렸다. 상자 안에는 차가운 금속성의 무기들이 기름을 머금은 채 가지런히 누워 있을 것이다. 황 보스가 만족스러운 듯 숨을 내쉬며 자신의 수하에게 돈 가방을 열어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알루미늄 가방의 잠금장치가 찰칵 열리고, 빳빳한 종이 다발이 내뿜는 짙은 잉크 냄새와 화학적인 지폐 냄새가 곰팡내 나는 지하의 공기를 황홀하게 갈랐다. 거래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시각에 의존하여 겉모습만 보는 멍청한 악당들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죽음의 징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선 채로 폐역의 공기 흐름을 미세하게 읽어내며 살육의 냄새를 추적했다. 마피아 브로커들의 호흡은 거래를 성사시킨 자들의 평온함이 아니었다. 그들의 심장 박동은 공격을 앞둔 맹수처럼 기형적으로 빨라져 있었고, 손바닥에서 배어 나오는 시큼한 긴장의 땀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무엇보다 나의 고막을 자극한 것은 내 머리 위 낡은 환풍구 쪽에서 들려오는 아주 미세한 옷깃의 마찰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환풍구 쪽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오래된 먼지 냄새 사이로 짙은 니코틴 냄새와 총기의 영점을 조절할 때 나는 금속 톱니의 미세한 짤깍거림이 선명하게 들렸다. 마피아 브로커들은 애초에 무기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폐역의 환풍구와 어두운 기둥 뒤에 미리 저격수들을 매복시켜 두었고, 돈 가방의 위치가 확인되는 순간 황 보스의 조직원들을 모두 몰살시키고 돈과 무기를 모두 챙겨 달아날 완벽한 살육의 함정을 파둔 것이다. 게다가 무기가 든 나무 상자에서는 아주 미세하게 플라스틱 폭약 알디엑스의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상자 자체가 거대한 시한폭탄인 셈이었다.
나는 이 부도덕한 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연극에서 정의로운 경고를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악당들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고 자멸하는 것은 눈먼 사냥개에게 가장 완벽한 식사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완벽한 방패 뒤에 숨어, 덜덜 떠는 연기를 하며 알루미늄 돈 가방을 들고 있는 황 보스의 수하 쪽으로 슬며시 뒷걸음질을 쳤다. 마피아 조직의 우두머리가 특유의 억양으로 헛기침을 하며 수신호를 보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매복한 저격수들에게 사격을 지시하는 죽음의 신호였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닥을 짚고 있던 지팡이의 손잡이를 비틀어 미리 장착해 둔 고출력 전자기 펄스 발생기를 작동시켰다. 이 장치는 주변 이십 미터 이내의 모든 무선 통신 기기와 조명 회로를 일시적으로 태워버리는 강력한 파동을 뿜어낸다. 찌릿하는 불쾌한 고주파 음과 함께 황 보스의 조직원들이 들고 있던 고출력 휴대용 조명등이 퍽 소리를 내며 일제히 터져버렸다. 무기를 비추던 유일한 빛이 사라지고, 지하철 폐역은 한 치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완벽하고 끔찍한 암흑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갑작스러운 정전에 당황한 악당들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빛을 잃은 자들은 공포에 질려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매복해 있던 저격수들의 소음기 달린 총구에서 불을 뿜는 소리가 빗발쳤다. 퍽퍽하며 살에 탄환이 박히는 끔찍한 파열음과 비명 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황 보스의 조직원들도 살아남기 위해 허공에 대고 권총의 방아쇠를 마구 당겼다. 사방에서 터지는 총성과 화약의 매캐한 냄새, 그리고 뜨거운 피비린내가 섞여 역겨운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하지만 빛이 차단된 이 지옥의 한가운데서 오직 나만이 완벽한 평화와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어둠은 나의 가장 친숙한 고향이자 무기다. 나는 총탄의 궤적과 사람들이 쓰러지는 소리를 디지털 공감각으로 정확하게 계산하며 탄착군을 유유히 피했다. 나의 목표는 오직 돈 가방을 들고 있던 사내였다. 나는 피비린내를 뚫고 소리 없이 사내의 등 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사내는 공포에 질려 가방을 부둥켜안고 바닥에 엎드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탱고에게 은밀한 휘파람으로 제압 신호를 보냈다.
어둠을 가르고 날아간 래브라도 리트리버의 육중한 몸집이 사내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짐승의 묵직한 압박에 사내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순간, 나는 지팡이의 단단한 티타늄 끝으로 사내의 손목 신경 다발을 거칠고 정확하게 내리찍었다. 뼈가 찌릿하게 울리는 고통에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가방의 손잡이를 놓았다.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알루미늄 가방을 공중에서 부드럽게 낚아채어 나의 품으로 단단히 끌어안았다. 수백억 원에 달하는 악당들의 피 묻은 돈이 마침내 눈먼 사냥개의 아가리 속으로 완벽하게 들어온 것이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발버둥 치는 사내를 뒤로한 채, 서로를 죽이느라 혈안이 된 마피아와 조폭들의 총격전을 여유롭게 빠져나왔다. 나의 머릿속에는 이미 폐역으로 들어올 때 기억해 둔 안전한 비상 통로의 위치가 완벽하게 그려져 있었다. 총알이 콘크리트 기둥을 부수며 파편을 튀기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복잡한 지하의 미로를 관통했다. 폭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점차 옅어지고, 대신 지상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신선한 밤공기의 냄새가 환풍구를 타고 희미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연결된 낡은 철제 계단을 밟고 올라오자, 차가운 빗방울이 나의 이마를 식혀주었다. 도심의 네온사인 불빛이 밤하늘을 번지게 하고 있겠지만, 나의 눈에는 오직 내가 거머쥔 이 무거운 가방의 완벽한 질감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하 폐역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희미하게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약이 터지는 둔탁한 폭발음이 발밑의 땅을 진동시켰다. 멍청한 악당들은 무기 상자에 설치된 함정을 건드려 스스로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부터 요란하게 울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가방을 단단히 고쳐 쥐고 탱고의 젖은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누군가는 내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방관하고 살인자들의 돈을 훔친 타락한 악당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하지만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선악의 잣대는 힘을 가진 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다. 나는 악당들의 탐욕을 먹어 치우고 그 피 묻은 돈으로 나의 사랑하는 보보를 세상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지켜낼 견고한 성을 쌓을 것이다. 그것이 시각을 잃은 자가 이 지옥 같은 도시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로 살아남는 유일한 법칙이다.
나는 젖은 아스팔트 위를 짚는 지팡이의 경쾌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둠 속을 헤쳐 나온 가장 완벽한 승리자로서 일정한 보폭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내일 아침 뉴스에서는 도심 지하에서 벌어진 끔찍한 조직폭력배들의 참사가 보도되겠지만, 그 시끄러운 소음은 보보가 끓여주는 따뜻한 커피의 향기를 결코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눈먼 사냥개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오만하게 밤거리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