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튀기는 주방과 마왕성을 정복한 미치광이 요리사

by 김경훈

마왕의 지루함과 납치된 미식가들


대륙의 최북단 척박하고 메마른 검은 대지 위에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마왕성이 자리 잡고 있다.

마왕 말파스는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뻔한 살육과 피비린내에 깊은 권태를 느끼며 거대한 옥좌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인간들의 비명소리도 이제는 지루한 자장가처럼 들렸고 무엇보다 마계의 식단이 몹시도 형편없다는 사실이 그를 가장 분노하게 만들었다.

매일같이 식탁에 올라오는 숯덩이처럼 타버린 오크 고기나 핏물만 질질 흐르는 질긴 날고기에 신물이 난 마왕은 혀끝을 자극할 진정한 미식을 갈구했다.

결국 참다못한 마왕은 흉악한 마수들을 인간계의 번화한 수도로 파견하여 대륙에서 가장 이름난 고급 식당의 요리사들을 모조리 마왕성으로 납치해 오라는 황당무계한 명령을 내렸다.



목숨을 건 요리 경연의 서막


며칠 뒤 마왕성의 서늘하고 음침한 지하 거대 조리실에는 수도에서 강제로 끌려온 수십 명의 일류 요리사들이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마왕 말파스는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며 자신의 혀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궁극의 요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자는 그 즉시 펄펄 끓는 용암 솥에 던져버리겠다고 잔혹하게 선언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요리사들은 인간계에서 몰래 챙겨 온 평범한 소고기와 야채를 꺼내어 허둥지둥 요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아수라장 속에서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짝다리를 짚고 서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는 엘도리아 뒷골목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독설가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수석 요리사 고든이었다.

고든은 마왕의 끔찍한 협박 따위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고 오직 이 불결하고 형편없는 마계의 주방 위생 상태와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 같은 식재료들에 극도로 분노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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