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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조향사

겨드랑이에서 피어나는 장미

by 김경훈

백화점 일층 화장품 매장의 공기는 언제나 독한 알코올 냄새와 수백 가지의 인공적인 꽃향기가 뒤엉켜 숨이 막혔다.

대리석 바닥 위로 구두 굽이 부딪히는 딱딱한 소리가 하루 종일 귓가를 때렸다.

향수 코너의 수석 판매원인 박은 빳빳하게 다려진 검은색 정장을 입고 손님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의 이마에는 끈적한 식은땀이 맺혀 있었지만 그의 주변에서는 땀 냄새 대신 묵직하고 고혹적인 불가리안 로즈와 우디 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박의 초능력은 이 엉뚱한 시대에서도 가장 모순적이고 지독한 능력이었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몸의 모공에서 최고급 향수의 원액 같은 땀을 흘렸다.

반대로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의 몸에서는 하수구 밑바닥에서 썩어가는 생선 내장 냄새가 진동했다.


오후 세 시 까다로워 보이는 중년 여성이 박의 매대 앞에 섰다.

그녀의 목에 감긴 실크 스카프가 스치는 바스락 소리가 예민하게 들렸다.

여자는 진열대에 놓인 가장 싸구려 기획 상품 향수를 집어 들고는 코끝을 찡그렸다.

이 향수 알코올 냄새가 너무 심한데 지속력도 별로일 것 같고.

여자의 콧바람이 매몰차게 향수병을 때렸다.

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실 그 향수는 공업용 에탄올에 싸구려 인공 향료를 섞어 만든 악성 재고품이었다.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자신의 겨드랑이에서 뿜어져 나올 시궁창 냄새가 두려웠다.

박은 직업적인 가짜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과장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객님 안목이 정말 탁월하십니다.

이 제품은 프랑스 남부 그라스 지방에서 새벽이슬을 머금은 장미만 천 송이 넘게 농축해서 만든 한정판입니다.

처음에는 알코올 향이 나지만 체온과 섞이면 살결에서 잔향이 이십사 시간 넘게 지속되는 마법 같은 향수죠


뻔뻔하고 거대한 거짓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박의 척추를 타고 서늘하고 끈적한 땀줄기가 흘러내렸다.

땀구멍이 열리며 박의 체온이 살짝 올라갔다.

그러자 박의 셔츠 안쪽에서부터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하고 관능적인 장미 향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그것은 싸구려 향수병에서는 절대 날 수 없는 깊고 농밀한 향기였다.

거짓말의 대가로 분비된 박의 땀 냄새가 매장의 공기를 순식간에 장악했다.


여자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는 킁킁거리며 박의 주변 공기를 들이마셨다.

어머 정말이네 방금 전까지는 몰랐는데 잔향이 이렇게 고급스러울 줄이야 세상에 향기가 너무 깊고 매혹적이에요 당장 세 병 포장해 주세요.

여자는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영수증이 출력되는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박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

그의 셔츠는 이미 거짓말의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피부에 척척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향기가 코를 찔렀지만 박에게 그것은 자신의 양심이 썩어 문드러지며 내뿜는 악취나 다름없었다.


박은 이 능력 덕분에 백화점 전체에서 몇 년째 판매왕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냄새가 날아갈까 봐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뻔뻔한 거짓말을 지어내야 했다.

동료들에게는 매일 아침 내가 밥값을 내겠다고 거짓말을 쳤고 점장에게는 오늘 회식에서 끝까지 남겠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사람들은 그의 몸에서 나는 매혹적인 냄새에 홀려 그의 모든 말을 진실로 믿었다.

땀이 식어 향기가 사라질 때쯤이면 박은 또 다른 거짓말을 지어내어 땀을 쥐어짜 내야 했다.

그의 삶은 향기로운 거짓말로 쌓아 올린 위태로운 모래성이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저녁 매장 마감 직전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빗물에 젖은 우산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남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흰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매대 앞으로 다가왔다.

톡 톡.

지팡이 끝이 대리석에 닿는 경쾌한 진동이 박의 발끝에 전해졌다.

남자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로포즈를 할 건데 그 사람의 분위기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진짜 향수를 찾고 싶습니다 거짓 없는 아주 솔직하고 순수한 향으로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박은 습관적으로 혀에 침을 발랐다.

머릿속에서는 재고가 가장 많이 남은 비싼 향수를 팔아치울 화려한 거짓말이 맴돌았다.

이 제품은 히말라야의 고산지대에서 채취한.

박이 거짓말을 시작하려던 찰나 남자가 젖은 얼굴을 들어 박이 있는 쪽을 향해 미소 지었다.

부탁드립니다 저에게는 보이지 않는 대신 냄새가 곧 그 사람의 얼굴이고 진실이거든요.


그 순간 박의 목구멍에 커다란 돌덩이가 걸린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진실이라는 단어가 그의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남에게 진실을 말해본 적 없는 그였다.

박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드는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진열대 구석에 먼지가 쌓인 작고 투박한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가장 싸고 투박하지만 어떤 인공적인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들꽃 향수였다.


손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향수는 백화점에서 가장 값싼 제품입니다 포장도 볼품없고 유행도 지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육 년 동안 이 매장에서 맡아본 향기 중에 가장 가식 없고 따뜻한 들꽃 냄새가 납니다 사랑하는 분을 향한 손님의 마음과 가장 닮아있는 진짜 향수입니다.


그의 입에서 거짓 없는 진실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 박의 셔츠 안쪽에서 끔찍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매혹적인 장미 향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리고 하수구가 역류하는 듯한 끔찍한 썩은 내가 훅 끼쳐 올라왔다.

며칠 묵은 음식물 쓰레기와 비릿한 진흙이 섞인 듯한 지독한 냄새였다.

박은 수치심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남자가 불쾌해하며 당장 매장을 나갈 것이 뻔했다.

박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남자의 호통을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는 도망치지 않았다.

남자는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악취 속에서도 가만히 손을 뻗어 박이 내민 작고 차가운 향수병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나네요 썩은 내 같기도 하고요.

남자의 말에 박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지독한 냄새 속에서 당신의 진짜 목소리가 들립니다 화려한 향기로 저를 속이려던 사람들의 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아주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의 땀 냄새요 향수 잘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남자가 지팡이를 두드리며 멀어지는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아스팔트 위로 흩어졌다.

박은 텅 빈 매장에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는 여전히 시궁창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지만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체취가 부끄럽지 않았다.

그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묵직하게 썩어가는 자신의 진실된 냄새를 폐부 깊숙이 채워 넣었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거짓말쟁이는 그날 밤 가장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백화점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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