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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는 이름의 보물지도

by 김경훈

오래된 톱니바퀴와 정체 모를 액체들이 담긴 유리병이 가득한 '내일의 발명소'에는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접착제를 만들겠다며 수년째 연구에 매진해온 발명가 '실버'가 살고 있었죠.

그리고 그의 발치에는 커다란 리트리버, 탱고가 떨어진 종이 뭉치들을 베개 삼아 누워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실버는 절망 섞인 비명을 질렀습니다.


"또 실패야! 강철도 붙일 수 있는 강력한 풀을 만들려 했는데, 이건 손가락만 대도 툭 떨어지잖아.

전혀 끈적이지도 않고 금방 말라버려.

내 수년간의 노력이 이 쓸모없는 액체 한 병으로 끝나다니!"


실버가 실패작이 담긴 병을 쓰레기통에 던지려 할 때, 탱고가 천천히 일어나 실버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습니다.


"실버, 그 병을 버리기 전에 잠시만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혹시 '세렌디프의 세 왕자' 이야기를 아시나요?

그들은 전설의 보물을 찾아 먼 길을 떠났지만, 결국 보물은 찾지 못했답니다.

대신 그들은 보물을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우연을 마주하며 예상치 못한 지혜와 용기를 얻었죠.

사람들은 이것을 '세렌디피티'라고 불러요."


실버가 멍하니 탱고를 바라보자, 탱고는 꼬리로 바닥에 흩어진 책갈피들을 가리키며 덧붙였습니다.


"당신은 강력한 접착제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는지 몰라도, 세상에 없던 '자유로운 접착제'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어요.

보세요, 당신이 아까 꽂아둔 책갈피가 자꾸 떨어져서 불편해하지 않았나요?

만약 이 약한 접착제를 종이 끝에 바른다면, 언제든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메모지가 될 거예요."


실버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는 즉시 실패한 액체를 종이에 발라 벽에 붙여보았습니다.

종이는 가볍게 붙어 있다가도 손을 대면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었습니다.


탱고는 실버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며 부드럽게 속삭였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행운을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우연'이라고 부른대요.

당신이 그동안 최선을 다해 접착제를 연구하지 않았다면, 이 '운 좋은 실수'조차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세렌디피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겐 찾아오지 않거든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여정이 의미 없는 건 아니에요.

때로는 잘못 든 길이 우리를 더 아름다운 정원으로 인도하기도 하니까요."


실버는 그 '실패작'으로 세상을 바꿀 메모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실 바닥에 뒹굴던 수많은 파편은 이제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다음 발견을 향한 소중한 각주들이 되었습니다.

탱고는 다시 자리에 누워 코끝을 씰룩였습니다.

발명소의 공기 속에는 이제 절망의 냄새 대신, 예상치 못한 행운이 가져다준 달콤한 희망의 향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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