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파도가 밤낮없이 바위를 때리는 '침묵의 섬' 정상에는 밤바다의 길잡이가 되는 낡은 등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등대지기 일을 배우러 온 젊은 청년 '기수'와, 등대의 역사를 온몸으로 기억하는 노련한 등대 소장,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는 리트리버 탱고가 살고 있었죠.
기수는 최근 깊은 수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부양하던 형이 돌연 외국으로 떠나버리자, 어머니를 이곳 외딴섬까지 모셔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 몇 개월의 수발 끝에 기수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소장님, 더 이상은 못 하겠습니다.
어머니를 육지의 요양원으로 보내야겠어요.
제 인생도 망가지는 것 같고, 당장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럽고 귀찮습니다."
기수가 짐을 싸며 모질게 말할 때, 등대 난간에 앞발을 올리고 밤바다를 내려다보던 탱고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기수를 바라보았습니다.
탱고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보다 깊고 낮게 울렸습니다.
"기수, 사람들은 누구나 선량해야 한다고, 효도해야 한다고 거창하게 말하곤 하죠.
하지만 막상 현실의 괴로움과 귀찮음이라는 파도가 들이닥치면, 그 거창한 말들을 가장 먼저 바다에 던져버리곤 해요."
기수가 고개를 숙이자, 탱고는 기수의 곁으로 다가와 차가워진 그의 손등에 따뜻한 콧김을 불어넣으며 덧붙였습니다.
"등대는 말이에요, 단순히 불을 밝히는 기계가 아니에요.
저 멀리 어두운 바다에서 길을 잃은 배들에게 '누군가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온기를 전하는 존재죠.
그런데 기수, 당신의 가슴이 이미 얼어붙어 있다면 어떻게 저 차가운 밤바다를 녹일 빛을 보낼 수 있겠어요?"
이때 등대 소장이 기수의 어깨를 짚으며 탱고의 말을 이었습니다.
"기수야, 모친을 그저 짐처럼 여기고 간단히 치워버릴 마음가짐이라면, 이번 기회에 등대지기 일도 함께 정리하는 게 좋겠구나.
등대는 가슴이 얼어붙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세상을 밝히는 등대를 어찌 차가운 마음으로 지켜낼 수 있겠느냐?"
탱고는 멀리 수평선에서 깜빡이는 작은 불빛을 응시하며 마지막 말을 건넸습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몫은 거창한 구호 속에 있지 않아요.
당장 내 눈앞의 소중한 존재를 외면하지 않는 그 뜨거운 책임감 속에 있죠.
기수, 당신의 마음이라는 등대에 다시 불을 지피세요.
보름달처럼 평안한 마음은, 내가 져야 할 짐을 기꺼이 품어 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기수는 등대 불빛이 비추는 어머니의 방 창문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섬을 휘감는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탱고의 곁에서 다시 시작된 기수의 마음은 조금씩 등대의 불꽃처럼 달궈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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