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는 데이터를 좇는 현대인들
신기루를 좇는 무한 스크롤의 굴레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통해 불가능한 것을 얻고자 하는 행위는 미친 짓이라고 일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각없는 자들은 그 어리석은 짓을 죽을 때까지 되풀이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원대한 꿈을 추구하라고 부추긴다.
십 년 뒤에는 수십억 대의 자산가가 되어야 하고, 타인에게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존경을 받아야 하며, 사회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쥐어야 한다고 속삭인다.
하지만 그 꿈의 정점에 도달하면 인간은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백만장자가 되면 천만장자를 부러워하고, 권력을 쥐면 더 큰 권력을 향해 칼을 겨누는 것이 인간의 얄팍한 본성이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결코 사용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도록 설계된 악랄한 알고리즘의 무한 스크롤과 같다.
우리는 손끝을 내리면 나타나는 다음 페이지의 환상에 사로잡혀, 지금 당장 내 곁에 존재하는 확실한 행복의 데이터들을 무참히 방치하고 삭제해 버린다.
마치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이 십 년이나 이십 년 뒤에야 다운로드할 수 있는 미래의 전유물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감각 사진]
길고 고단했던 연구실 일정을 마치고 경북대학교 교정의 낡은 나무 벤치에 안내견 탱고와 함께 나란히 앉아 숨을 고르는 감각을 떠올려 본다.
봄기운을 머금은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천천히 식히며 지나가고, 곁에 엎드린 탱고가 자신의 무거운 턱을 내 허벅지 위로 툭 올려놓는다.
시각적인 풍경은 닿지 않지만, 얇은 바지 천을 뚫고 피부 깊숙이 스며드는 짐승의 묵직한 하중과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따뜻한 숨결의 진동이 온몸의 감각 세포를 선명하게 깨운다.
닿을 수 없는 십 년 뒤의 막연한 성공을 좇느라 복잡하게 얽혀 있던 뇌 속의 차가운 회로들이 내 무릎 위에서 온전한 신뢰를 보내는 이 작고 단단한 생명체의 체온 덕분에 일순간 조용하고 평화로운 온도로 녹아내리는 그 벅차고도 나른한 찰나 말이다.
무지를 자각하는 자기 객관화의 리터러시
우리는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 당연한 명제가 살아가면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철학적 과제다.
아우렐리우스는 무지와 잘못된 가치관을 대체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훈련하고 그것을 단단한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문헌정보학에서 정보 리터러시의 첫걸음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으며 어떤 정보가 쓰레기인지 걸러내는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다.
우리 내면의 가치관도 이와 똑같은 큐레이션 과정이 필요하다.
헛된 야망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불필요하고 근시안적인 불량 데이터를 머릿속에서 과감하게 삭제하는 훈련을 매일 반복해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가능한 환상에 목을 매는 대신, 오늘 하루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소박한 일상의 루틴에 온전히 집중하는 훈련이다.
그런 지독한 자각과 성찰의 훈련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헛된 곳을 찾아 헤매는 미친 짓을 멈추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시스템 오류 앞에서도 묵묵히 코드를 짜는 철학자
살다 보면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거대한 문제라는 시스템 에러에 부딪힐 때가 있다.
애써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무참히 실패하거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건강이 무너지거나, 억울한 오해를 받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지독한 좌절의 순간들이다.
늘 지혜로울 것만 같은 역사 속의 위대한 철학자들도 사실은 이러한 삶의 참혹한 에러 코드 앞에서 수없이 눈물을 삼켰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들을 묵묵히 수행해 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어떤 것을 시작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접근성이 꽉 막힌 거대한 사회적 장벽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가슴 깊이 새긴다.
세상의 모든 오류를 당장 고칠 수는 없지만, 탱고의 하네스를 쥐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는 그 작은 시작 하나가 결국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며 단단하게 세상과 관계 맺기
불가능한 것을 좇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금 내 곁의 행복을 껴안는 것,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절망 앞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스토아 철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나를 지키면서도 세상과 단단하게 관계를 맺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우리는 거창한 영웅이 될 필요가 없다.
십 년 뒤의 막연한 보상을 위해 오늘이라는 소중한 화폐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내 삶의 진정한 권력은 타인의 인정이나 통장 잔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역경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나의 하루를 단정하게 지켜내는 내면의 근육에서 나온다.
오늘부터라도 저 멀리 있는 환상의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발걸음을 멈추고, 이미 내 마음의 서재에 고요하게 앉아 있는 지혜라는 파랑새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야 할 시간이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