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우 속의 배달부
왕국 수도의 밤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촤아아아!
빗줄기는 도시의 돌바닥을 때리며 자욱한 물안개를 피워 올렸고, 하수구에서는 역류한 오물 냄새와 젖은 짐승의 털 냄새가 진동했다.
그 빗속을 뚫고, 낡은 빗자루 하나가 위태롭게 날아가고 있었다.
빗자루 위에 탄 사내, 제트는 흠뻑 젖은 망토를 여미며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젠장! 왜 하필 오늘따라 ‘비행 금지 구역’이 늘어난 거야!”
제트의 등에는 거대한 보온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가방 안에서는 [드워프 화덕 피자 - 용암 치즈 토핑 추가]가 식어가고 있었다.
그의 목적지는 도시 중앙에 우뚝 솟은 마법의 탑, ‘지혜의 첨탑’ 99층 펜트하우스였다. 이곳은 왕국 최고의 대마법사 아르케의 거처였다.
문제는 이 탑의 엘리베이터(순간이동진)가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것이었다. 제트는 탑의 외벽에 난 비상계단을, 빗자루도 타지 못한 채 두 발로 뛰어올라가야 했다.
탁, 탁, 탁, 탁.
99층. 제트의 허벅지가 터질 듯이 불타올랐다. 숨을 쉴 때마다 폐에서 쇳소리가 났다. 빗물과 땀이 섞여 눈을 찔렀다.
“허억… 허억… 도착… 했다…”
제트는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 앞에 섰다. 고급스러운 참나무 문에서는 은은한 샌달우드 향기가 났다. 그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초인종을 눌렀다.
딩- 동- (천상의 하프 소리)
2. 식어버린 용암과 대마법사의 분노
끼이익.
문이 열리자, 따뜻하다 못해 후끈한 열기와 함께 최고급 와인 향기가 훅 끼쳐왔다.
대마법사 아르케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와인잔이 들려 있었고, 표정은 이미 구겨져 있었다.
“늦었군.”
아르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죄송합니다, 대마법사님. 폭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안 돼서… 게다가 1층부터 걸어오느라…”
“변명은 됐고. 물건이나 내놔.”
아르케는 거칠게 피자 박스를 낚아챘다. 박스는 빗물에 젖어 눅눅해져 있었다. 아르케는 박스를 열었다.
푸슈슈…
원래라면 용암 치즈가 지글지글 끓고 있어야 할 피자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치즈는 딱딱한 고무처럼 변해 있었고, 페퍼로니는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이게 뭔가?”
아르케가 피자 조각을 들어 올렸다. 치즈가 늘어나지 않고 뚝 끊어졌다.
“이게 용암 피자야? 아니면 ‘빙하 피자’야?”
“아, 그게… 오면서 식은 것 같습니다. 제가 데워 드릴 수는 없지만, 보온 마법을 걸어왔는데도 비가 워낙 많이 와서…”
“식은 피자를 먹으라고? 나 아르케한테? 왕국 마법 학회장인 나한테?”
아르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피자 박스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철퍼덕.
토핑들이 고급 카펫 위로 쏟아졌다. 올리브와 버섯이 뒹굴었다.
“다시 가져와. 당장 새걸로 가져오란 말이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그건 곤란합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배달 지연은 환불 사유가 안 됩니다. 그리고 이미 드시려고 손을 대셨…”
“뭐? 천재지변? 내가 누군지 몰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비구름도 날려버릴 수 있어! 네가 게을러서 늦은 걸 날씨 탓을 해?”
아르케는 품에서 ‘마법 태블릿(수정 석판)’을 꺼냈다.
“좋아. 말이 안 통하는군. ‘배달의 기사’ 앱 켜.”
3. 별점 테러와 리뷰 협박
제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고, 고객님? 뭘 하시려고…”
“리뷰 써야지. 아주 솔직하고 상세하게.”
아르케는 마법 펜으로 석판을 탁, 탁, 탁 두드렸다.
“별점? 당연히 1점이지. 아니, 0점이 없는 게 한이군.”
슥슥. (리뷰 쓰는 소리)
[작성자: 대마법사 아르케]
[별점: ★☆☆☆☆]
[내용: 최악입니다. 용암 피자를 시켰는데 돌덩이가 왔네요. 배달원은 늦어놓고 날씨 탓만 하고, 사과는커녕 말대꾸를 합니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건지? 다시는 안 시킵니다. 이 배달원 자르세요. 안 그러면 길드 전체에 저주를 내리겠습니다.]
“자, 전송 버튼 누른다? 누르기 전에 무릎 꿇고 빌면 생각해 보지.”
아르케는 비열하게 웃으며 제트를 내려다보았다.
제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오늘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비를 맞으며 일했다. 배달료 고작 동화 5닢을 벌기 위해. 그런데 이 오만한 마법사는 따뜻한 방에서 와인을 마시며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