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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301호의 탭댄스와 뒤집힌 중력

by 김경훈


1. 고막을 찢는 심장 소리


왕국 수도의 외곽,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나선형의 바벨탑’.

이곳은 가난한 마법사, 은퇴한 용병, 그리고 도시로 상경한 이종족들이 모여 사는 저가형 집합 주거지였다.


이 탑의 301호에는 7서클 승급 시험을 준비하는 예민한 마법사 케일이 살고 있었다.

그는 3년째 낙방 중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소음 때문이었다.


쿵… 쿵… 쿵…


천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단순한 발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거인의 심장이 301호의 천장에 붙어서 뛰는 것 같았다.


쿵!


소리가 날 때마다 케일의 책상 위에 놓인 잉크병이 달그락거리며 떨렸다. 찻잔 속의 허브티 표면에 동심원 파장이 일었다. 천장 틈새에서는 묵은 먼지가 푸석하게 떨어져, 케일의 정수리와 펼쳐둔 마법서 위로 눈처럼 내려앉았다.


“으으으… 제발… 제발 좀!”


케일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는 청각 강화 마법을 익힌 탓에, 남들보다 소리에 10배는 더 민감했다.


그 소리는 불규칙했다.

쿵, 쿵, 쿵짝. 쿵, 쿵, 쿵짝.

마치 엇박자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사람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리듬이었다.


케일은 귀마개를 했다. 소용없었다. 그 진동은 귀가 아니라 뼈를 타고 뇌수로 직접 전해졌다. 벽에 방음 마법을 걸어도 보았다. 하지만 이 낡아빠진 탑은 마력 전도율이 엉망이라, 방음 마법을 걸면 오히려 소리가 벽 안에서 공명하여 증폭되었다.


우우웅- 쿵! 우우웅- 쿵!


“미쳐버리겠네, 진짜!”


케일은 충혈된 눈으로 천장을 노려보았다.

윗집 401호. 그곳에는 일주일 전에 새로 이사 온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2. 401호의 거인, 티타누스


참다못한 케일은 항의하러 올라갔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냄새가 달라졌다. 3층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났는데, 4층으로 올라가자 짐승의 누린내와 뜨거운 땀 냄새가 훅 끼쳐왔다.


401호의 문은 다른 집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케일은 문을 두드렸다.


쾅, 쾅!


“나오시오! 밑에 집이오!”


끼이이익-


문이 열리자, 거대한 그림자가 케일을 덮쳤다.

키가 3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구. 바위 같은 근육. 그리고 머리에는 뿔이 두 개 달린 오우거, 아니 하프 자이언트(Half-Giant)였다.


그의 이름은 티타누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표정으로, 손에는 아주 작은 찻잔을 들고 있었다.


“어… 무슨 일이신가요, 작은 이웃님?”


티타누스의 목소리는 동굴의 메아리처럼 웅장했다.


“무슨 일이냐고요? 발소리! 발소리 좀 어떻게 해봐요! 당신이 걸을 때마다 우리 집 천장이 무너질 것 같다고요!”


케일이 악을 썼다. 티타누스는 당황하며 발을 동동 구르려다, 아차 싶었는지 멈췄다.


“아… 죄송해요. 저는 최대한 살금살금 걷고 있는데… 제가 좀 무거워서요.”


“살금살금? 그게 살금살금 걷는 소리라고요? 무슨 집 안에서 코끼리를 키우는 줄 알았네! 그리고 그 엇박자 리듬은 뭡니까? 쿵, 쿵, 쿵짝 하는 거!”


티타누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게… 사실 저는 탭댄스를 연습하고 있거든요.”


“뭐? 탭댄스?”


“네. 제 꿈이 왕립 극장 무용수라서… 발끝으로 섬세하게 리듬을 타는 연습 중이었어요. 뒤꿈치를 들고 하니까 조용할 줄 알았는데…”


케일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3미터 거인이 그것도 몸무게가 500kg은 나갈법한 거인이 탭댄스를 춘다니. 그것도 뒤꿈치를 들고?


“이보세요. 당신이 뒤꿈치를 들면, 발가락에 가해지는 압력이 몇 톤인지 알아요? 그게 송곳처럼 바닥을 찍는 거라고요! 제발 부탁인데, 연습은 1층 마당에서 하세요!”


“하지만… 밖에서 하면 사람들이 비웃는걸요. 거인이 무슨 춤이냐고…”


티타누스가 울먹였다.


“제 알 바 아닙니다! 오늘 밤부터 또 소리 나면, 그땐 경비병 부를 겁니다!”


케일은 으름장을 놓고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이 낡은 탑의 부실한 바닥과 거인의 몸무게 조합은 단순히 조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3. 금지된 마법, 중력 역전


그날 밤.

소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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