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메종 마르지엘라 재즈 클럽

by 김경훈


1. 향수 설명

‘재즈 클럽(Jazz Club)’은 메종 마르지엘라의 레플리카 시리즈 중 가장 인기 있는 남성(혹은 중성) 향수다.

2013년 브루클린의 한 재즈 바를 모티브로 했다.

어두운 조명, 낡은 가죽 소파, 자욱한 담배 연기, 그리고 럼주 칵테일이 어우러진 퇴폐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지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퀴퀴한 냄새보다는 바닐라와 럼이 어우러진 달콤하고 포근한 향이 주를 이뤄, 가을/겨울철 ‘따뜻한 남자(혹은 여자)’의 향기로 사랑받는다.



2. 노트 구성

탑 노트 (Top Notes): 핑크 페퍼, 레몬, 네롤리

첫인상은 의외로 상큼하고 스파이시하다. 칵테일 잔의 가장자리에 묻은 레몬즙과 핑크 페퍼의 톡 쏘는 향이 알코올의 기운을 확 끌어올린다.

미들 노트 (Middle Notes): 럼(Rum), 클레리 세이지, 자바 베티버

이 향수의 정체성인 ‘술 냄새’가 난다. 독한 소주가 아니라, 오크통에서 숙성된 달콤하고 끈적한 럼주의 향이다.

베이스 노트 (Base Notes): 타바코 잎, 바닐라 빈, 스티락스

담배 냄새가 나지만, 매캐한 재떨이 냄새가 아니다. 말린 담배 잎 특유의 구수한 향과 달콤한 바닐라가 섞여 아주 부드럽고 크리미 하게 마무리된다.



3. 전체적인 리뷰

"나 오늘 좀 취하고 싶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달콤한 칵테일 한 잔 마시고 얼굴이 빨개지는 귀여운 허세가 느껴진다.

진짜 재즈 바의 땀 냄새나 찌든 담배 냄새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아주 잘 정돈되고, 깨끗하게 청소된, 그리고 방향제를 뿌려놓은 '세트장' 같은 재즈 클럽이다.

끈적하고 섹시하지만, 결코 위험하지는 않은 안전한 일탈의 향기다.



가짜 불량소년, 재즈 클럽의 달콤한 허세


앞서 만난 '베르가못 22'나 '어나더 13'이 차가운 실험실의 모범생들이었다면, 오늘 만난 친구는 학교 뒷골목에서 가죽 재킷을 걸치고 담배를 피우는(척하는) 소위 '노는 형'이다.

이름부터 '재즈 클럽'.

그는 브루클린의 지하 바에서 럼주를 마시고 시가를 태우는 고독한 예술가인 척 폼을 잡는다.

과연 이 친구가 진짜 위험한 남자인지, 아니면 중2병에 걸린 모범생인지, 그의 허세를 낱낱이 파헤쳐 보기로 했다.


그와의 만남은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서 시작된다.

그는 독한 럼주(Rum) 한 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으며 등장한다.

톡 쏘는 핑크 페퍼와 레몬 향이 섞인 알코올 기운이 훅 끼쳐온다.

"어때, 나 좀 위험해 보이지?"라고 묻는 듯한, 짐짓 거친 척하는 첫인상이다.

술 냄새가 나긴 나는데, 취해서 비틀거리는 알코올 중독자의 냄새가 아니라, 파티를 위해 잘 차려입고 막 샴페인을 터뜨린 듯한 유쾌한 취기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는 주머니에서 시가(Tobacco Leaf)를 꺼내 문다.

그런데 불을 붙이는 순간, 매캐하고 독한 연기 대신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가 퍼진다.

이것은 독한 담배가 아니다.

설탕물에 절여놓은 듯한, 아주 부드러운 파이프 담배 냄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몸에서는 바닐라 향기가 진동을 한다.


여기서 그의 정체가 탄로 난다.

그는 거친 재즈 뮤지션이 아니다.

그는 사실 단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마음 여린 로맨티시스트다.

겉으로는 가죽 재킷에 럼주를 마시며 고독을 씹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따뜻한 바닐라 라떼와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갈망하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그의 '퇴폐미'는 철저하게 계산된 패션이다.

그는 땀 냄새 섞인 지하의 재즈 클럽이 아니라, 청담동이나 한남동에 있는 입장료 비싼 고급 라운지 바의 냄새다.

아주 안전하고, 쾌적하며, 달콤하다.


최종 분석.

재즈 클럽은 '안전한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의 판타지다.

진짜 찌든 담배 냄새와 숙취는 싫지만, 그 분위기만은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완벽한 소품이다.


그를 느끼면, 거친 가죽 소파의 질감이 느껴지다가도 이내 보들보들한 담요의 촉감으로 변한다.

그는 위험하지 않다.

그가 건네는 술은 독약이 아니라, 달콤한 시럽이 듬뿍 들어간 칵테일이다.


겨울밤, 진짜로 망가지기는 싫지만 분위기는 잡고 싶을 때, 이 귀여운 허세남만 한 친구가 없다.

그가 피우는 담배 연기는 콜록거리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코를 박고 킁킁거리게 만드니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다정한 불량소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르 라보 베르가못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