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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라보 베르가못 22

by 김경훈


1. 향수 설명

‘베르가못 22(Bergamote 22)’는 르 라보의 초기 라인업 중 하나로, 개발 당시 코드네임이 ‘파이어 코롱(Fire Cologne)’이었을 만큼 강렬한 확산력과 에너지를 자랑한다. 시트러스 계열 향수는 가볍고 지속력이 짧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고안되었다. 단순히 신선한 레몬 향이 아니라, 앰버와 머스크, 그리고 우디 노트가 묵직하게 받쳐주는 구조로, 상쾌하면서도 깊이감 있는 ‘남녀 공용 시트러스’의 정석으로 불린다.



2. 노트 구성

탑 노트 (Top Notes): 베르가못, 자몽, 페티그레인

탄산수가 터지듯 톡 쏘는 청량감이 압도적이다. 단순히 시기만 한 레몬이 아니라, 자몽의 쌉싸름함과 페티그레인의 풋풋한 풀 향기가 섞여 입안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미들 노트 (Middle Notes): 오렌지 블라썸, 넛맥(Nutmeg)

꽃향기는 아주 스치듯 지나가고, 알싸한 넛맥(육두구)의 스파이시함이 등장한다. 이것이 마냥 가벼운 물 냄새로 끝나지 않도록 엣지를 더해준다.

베이스 노트 (Base Notes): 시더우드, 베티버, 앰버, 머스크

잔향은 의외로 나무 냄새다. 젖은 나무가 아니라, 바짝 마른 깨끗한 나무와 포근한 머스크가 남아, 세련된 호텔 침구 같은 느낌을 준다.



3. 전체적인 리뷰

"이것은 레몬이 아니다.

레몬을 4K 해상도로 리마스터링 한 결과물이다." 자연의 베르가못보다 더 베르가못 같은 완벽하게 계산된 신선함이다.

셔츠 깃을 빳빳하게 세운 전문직 종사자에게 어울릴 법한, 빈틈없고 스마트한 향기다.

여름 향수로 분류되지만, 그 무게감 덕분에 사계절 내내 사용해도 무방하다.



스마트 팜에서 태어난 천재, 베르가못 22 관찰기


자연에서 나고 자란 것들은 어딘가 모르게 흠이 있기 마련이다.

벌레 먹은 자국, 비바람에 깎인 흔적, 덜 익은 풋내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오늘 만난 친구, 르 라보의 ‘베르가못 22’에게서는 그런 ‘자연스러운 오류’를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흙먼지 날리는 과수원이 아니라, 온도와 습도가 완벽하게 통제된 최첨단 ‘스마트 팜(Smart Farm)’에서 배양된 엘리트 과일이다.

과연 이 인공적인 천재와 인간적인 교감이 가능할지, 실험 가운을 입는 심정으로 그를 분석해 보았다.


그의 등장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다.

캡을 여는 순간, 고농축 된 베르가못과 자몽 입자가 레이저 빔처럼 쏟아져 나온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귤이나 오렌지의 친근한 냄새가 아니다.

시각장애인이라도 눈앞에 섬광이 번쩍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쨍한(Dazzling) ‘고해상도의 신선함’이다.

마치 “이것이 바로 완벽한 시트러스의 이데아다!”라고 시위하는 듯한, 압도적인 출력이다.


놀라운 점은 그 뒤에 이어지는 치밀한 계산이다.

보통의 시트러스 친구들이 “나 상큼하지? 안녕!” 하고 5분 만에 휘발되어 사라지는 반면, 이 친구는 넛맥이라는 향신료와 페티그레인의 쌉쌀함을 이용해 자신의 수명을 악착같이 늘려놓았다.

상큼함 속에 숨겨진 묘한 쓴맛과 매운맛.

이것은 그가 마냥 해맑은 과일이 아니라, 철저하게 설계된 공산품임을 증명하는 바코드와 같다.

그는 웃고 있지만, 그 미소는 0.1mm의 오차도 없이 계산된 각도로 지어지는 미소다.


시간이 지나고 과즙의 향연이 끝난 자리에는 아주 단단하고 건조한 시더우드와 베티버가 남는다.

이것은 나무 냄새지만, 숲 속의 나무가 아니다.

최고급 가구점에 진열된, 니스 칠이 완벽하게 된 매끈한 원목 테이블 냄새다.

먼지 한 톨, 습기 한 방울 용납하지 않는 결벽증적인 깨끗함.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는다.

땀 냄새나는 인간의 살결 위에 뿌려졌음에도, 그는 혼자 고고하게 ‘청결함’을 유지한다.

피부와 섞이지 않고, 피부 위에 코팅되는 느낌이다.


최종 분석 결과.

베르가못 22는 자연을 동경해서 만든 향수가 아니라, ‘자연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오만하고도 천재적인 과학자의 발명품이다.

그는 완벽하다.

깨끗하고, 세련됐으며, 지속력까지 좋다.


감각으로 그를 느끼면, 서늘한 소름이 돋는다.

그에게서는 흙의 온기나 바람의 자유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실험실의 차가운 공기와, 반도체 회로처럼 정교하게 짜인 향기의 구조물만이 만져진다.

그는 피곤한 오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각성제로는 최고지만, 마음을 기대어 쉴 수 있는 쉼터는 아니다.


그는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숨이 막힌다.

가끔은 흙 묻은 당근이나, 덜 익어서 떫은 땡감 같은 촌스럽고 서투른 향기들이 미치도록 그리워지게 만드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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