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수 설명
‘어나더 13(Another 13)’은 르 라보와 패션 매거진 \<AnOther Magazine\>의 협업으로 탄생한, 지극히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향수다. 주성분은 ‘암브록산(Ambroxan)’이라는 인공 향료다. 이는 고래의 토사물인 용연향(Ambergris)을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으로, 동물적인 살냄새와 묘한 중독성을 가진다. 2010년 한정판으로 출시되었다가 빗발치는 요청으로 정식 라인업에 합류했다. ‘향수 같지 않은 향수’, ‘영안실 냄새’, ‘가장 섹시한 살냄새’ 등 극단적인 평가가 공존한다.
2. 노트 구성
단일 노트 (혹은 비선형적 구조):
암브록산(Ambroxan): 향의 90%를 지배한다. 짭짤하고, 포근하면서도, 동시에 차가운 금속성의 뉘앙스를 풍긴다.
살리실산염(Salicylate) & ISO E Super: 빳빳한 새 종이 냄새, 혹은 표백된 나무 냄새를 만든다.
암브레트 시드(Ambrette Seeds) & 배(Pear): 아주 미세한 달콤함과 머스크 향을 더해, 이 차가운 화학물질에 ‘인간의 체취’ 같은 가면을 씌운다.
3. 전체적인 리뷰
"이것은 향수가 아니다.
화학 공식이다."라는 말이 어울린다.
자연의 꽃이나 나무 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갓 인쇄된 잡지, 차가운 수술대, 최신형 스마트폰의 액정, 그리고 방금 샤워하고 나온 사람의 증기가 섞인 듯한 묘한 향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냄새도 안 나는 '유령 향수'이고, 누군가에게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쨍한 '쇠 냄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한번 빠지면 대체 불가능한 마약 같은 매력이 있다.
사이보그와의 연애, 르 라보 어나더 13 관찰기
세상에는 완벽하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손을 잡는 순간 섬뜩할 정도로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오늘 만난 친구, 르 라보의 ‘어나더 13’은 바로 그런, 최첨단 연구소에서 배양된 ‘사이보그’다.
그는 자신을 ‘살냄새’라고 소개하지만, 그 살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매끄러운 실리콘과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과연 이 영혼 없는 안드로이드에게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호기심과 두려움을 안고 그를 가동해 보았다.
그와의 접촉은 매우 기묘하다.
스위치를 켜자(뿌리자), 코끝에 닿는 것은 알코올의 휘발성과 함께 나타나는 서늘하고 빳빳한 종이 냄새다.
그것도 갱지가 아니라, 최고급 패션 잡지의 반질반질한 내지를 손으로 쓸어 넘길 때 나는 잉크와 코팅지의 냄새다.
여기에 아주 약간의 배(Pear) 향기가 스치지만, 이것은 과수원의 배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분자 구조로 재현해 낸 ‘배 맛 젤리’의 냄새에 가깝다.
그는 웃고 있지만, 눈가에는 주름이 하나도 잡히지 않는 기괴한 완벽함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 그의 본체가 드러난다.
이 향수의 핵심 동력원인 \\암브록산(Ambroxan)\\이 윙윙거리며 작동을 시작한다.
이것은 분명 포근한 머스크 향인데, 어딘가 모르게 차갑다.
마치 한겨울에 쇠로 된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의 그 릿한 느낌, 혹은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감도는 수술실의 공기 같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섹시한 살냄새’라고 환호하지만, 비판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살’이 아니라 ‘살색 플라스틱’ 냄새다.
체온의 따뜻함 대신, 화학적으로 합성된 ‘깨끗함’만이 존재한다.
가장 황당한 것은 그의 ‘고스트(Ghost)’ 기능이다.
이 친구는 수시로 사라진다.
방금까지 옆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후각이 마비된 건가 싶어 당황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은 “무슨 향수 쓰세요? 냄새가 진동을 하네요”라고 묻는다.
정작 주인은 맡지 못하고 타인에게만 존재감을 과시하는 아주 짓궂고 기만적인 알고리즘을 가졌다.
내 코를 가지고 노는(Gaslighting) 향수라니, 인간보다 더 교활하다.
최종 분석.
어나더 13은 21세기가 낳은 ‘인공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다.
흙먼지 묻은 자연 따위는 촌스럽다고 비웃는 듯한, 지독하게 도시적인 향기다.
그는 감정이 없고, 땀을 흘리지 않으며, 영원히 늙지 않는 사이보그다.
그를 느끼면, 매끈한 유리벽이나 차가운 스테인리스 스틸의 질감이 떠오른다.
외로움이 느껴지지만, 그 외로움마저 세련된 디자인의 일부처럼 보인다.
그는 인간의 온기가 그리운 날에는 절대 찾지 않을 친구다.
하지만 가끔, 인간관계에 지쳐 완벽한 고독과 차가운 정적이 필요할 때, 이 영혼 없는 사이보그의 서늘한 포옹이 미치도록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현대인의 비극적인 취향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