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파카의 가스라이팅

가스라팅

by 이선우

시위 현장에서 가장 안전한 기자는 취재기자다. 그들은 시위대 속에 쏙 들어가서 펜과 수첩만 꺼내면 누가 기자인지 알 턱이 없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주변과 하나가 되어 버린다. 반면 우리 사진기자들은? 목에 카메라를 둘둘 감고 다니니 멀리서도 한눈에 티가 난다. 숨고 싶어도 숨을 수가 없다. 마치 목에 방울을 단 고양이 같달까?


그래서 매번 봉변을 당하는 건 우리다. 이건 직업병이라고 봐야 한다.

모든 것은 로버트 카파라는 사나이가 남긴 한 마디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말에 완전히 가스라이팅된 전 세계 사진기자들이 불나방처럼 현장 속으로 뛰어든다.


시위 현장에서 우리가 겪는 일들을 나열해 보자. 일단 욕설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야, 기레기!" 하는 소리는 이제 애교로 들릴 정도다. 물병이 날아오는 것도 일상이고, 심한 날에는 주먹이나 돌멩이까지 날아든다. 한 번은 가슴을 주먹에 맞은 적이 있는데, 그날 저녁 집에 가서 아내가 "가슴에 검댕 묻었어?"라고 하더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는 직업적 소명의식, 둘째는 이미지에 대한 욕심. 특히 이미지 욕심은 솔직히 인정한다. 사진기자치고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시위대 여러분들께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게 있다.

우리가 단순히 이미지 욕심 때문에만 그 자리에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있기 때문에 경찰의 강압적 진압이 어느 정도 제지된다. 경찰은 기본적으로 무력조직이다. 아무리 용맹한 시위대라도 방패와 곤봉을 든 경찰을 이기기 힘들다. 그런데 카메라가 있으면? 경찰도 함부로 달려들지 못한다. 경찰도 공무원이다. 언론사 메인 페이지에 증오에 차 곤봉 휘두르는 모습이 보도되는 것을 바라는 경찰은 없다. 그래서 인지 경찰도 사진기자를 싫어한다. 엄청 싫어한다.


반대로 시위대도 마찬가지다. 폭력적인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면 명분을 잃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좀 더 절제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현장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중재지만 말이다.

그러니 제발, 제발 부탁이다. 카메라 보고 달려들지 좀 마라. 우리도 부모형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집에 가면 밥 차려놓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고. 우리 딸이 "아빠, 안다쳤어 시위하는 사람 나쁜사람!"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사실 우리의 부탁은 간단하다. 시위 현장에서 멀쩡한 몸으로 집에 돌아가는 것. 이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


카파의 명언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만약 당신이 다치지 않고 집에 돌아갔다면, 그것은 충분히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현실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향할 것이다. 그게 우리의 숙명이니까. 다만 부탁 하나. 좀 살살하자. 우리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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