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끝자락, 경기도와 맞닿은 곳에 이 당구장이 있다.
재개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무성하지만, 아직 그대로인 동네.
토박이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오랜 시간 같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이웃 간의 신뢰, 정겨움, 공동체 의식이 자연스럽게 그 동네에 배어있다는 뜻이다.
하루는 손님없는 당구장에서 유리창에 붙은 낡은 스티커를 떼어내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매일 모니터 앞에서만 살았지,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잘 안되어, 검색도 해보고 혼자서 이런저런 방법을 쓰고 있었는데, 낯선 손님 한 분이 조용히 들어와 연습구를 치시더니 내 모습을 흘끗흘끗 보시곤 조심스레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유리창 스티커를 쉽게 떼는 요령을 친절히 알려주셨다.
그날 이후에도 그분은 혼자 몇 번 더 오셨고, 당구장 시설 관리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느 날은 친구분들을 데리고 오시더니, 환풍기가 고장 났다는 얘기에 직접 고쳐주시고 흡연실이 좁다고 고민을 털어놓자, 공사 도구를 챙겨와 하루종일 땀흘려 애쓰시면서 확장 공사까지 해주셨다.
알고 보니 그분은 70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일하시는 현직 목수셨다.
김장을 했다고 김치한통까지 가져다 주시는 모습까지 말 그대로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목수 선생님과 같이 오신 친구분 중 한분은 타일 선생님이다. 타일 선생님은 말은 없으시지만 이 당구장을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분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다 해주시려는 두 분은 망치질 하나 제대로 못하던 내게 천군만마 같은 존재가 되어주셨다.
이 당구장은 나 혼자 만든 공간이 아니다. 함께 세우고, 함께 돌봐준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곳은 내 당구장이 아니라, 모두의 당구장이다.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면, “여기가 내 놀이터인데, 내가 손보는 게 더 즐겁고 뿌듯하죠” 하시며 웃음을 지으신다.
그 웃음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조용히 다가온다.
또 다른 분, J 사장님은 사교성이 좋으셔서 처음 보는 손님들과도 금세 친구가 되신다. 마치 당구장 매니저처럼 혼자 온 손님들을 자연스럽게 매칭해주시고, 내가 자리를 비울 때도 든든히 지켜주신다.
그리고 K 선생님. 따로 부탁드리지도 않았는데, 필요하다 생각하셨는지 오전엔 나 대신 당구장을 운영해주신다. 주인이 따로 없는 듯, 내 일처럼 애정을 쏟아 도와주시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손님이 자리를 비우면 내가 가기도 전에 먼저 치워주고, 회원관리도 척척 도와주며, 자연스럽게 손님을 맞이해주는 고마운 회원들을 볼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조용히, 든든한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50년 넘게 살아오며 이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솔선수범하며 진심으로 함께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오랫동안 투자라는 일을 하며 모니터 속 숫자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해온 나로서는, 이런 경험이 내 삶에 주는 가치를 숫자로 판단하며 설명할 수 없다. 이건 성공도, 실패도 아닌,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다.
분명한 건, 이 당구장을 지키고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따뜻함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이 있어 이곳은 더 이상 단순한 당구장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이 작은 공간은 내가 새로 만난, 진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