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의 정

형제자매 간 우애란 어떤 것인가

by 여여

나는 맏이로 태어났다. 나는 유년기 때부터 주변 상황이나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남달랐다. 게다가 비교적 어릴 적 사건들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뒤돌아 보면 나는 철부지 때부터 쓸데없는 고집이 있었다. 예를 들면 남의 것을 얻어먹으면 안 된다 든 지, 남이 먹던 것은 먹지 않는다 던 지,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던지 등등.. 이런 생각은 어린 나이였기에 학습의 결과는 아니었던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전생에 가졌던 그런 사고방식을 이승에 오면서 그 흔적을 가져왔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영혼은 여러 생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진화하며 성장한다고 한다. 전생의 기억, 경험, 트라우마 등이 현생의 잠재의식이나 무의식 속에 남아 현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나의 전생은 까칠하지만 자존감 강한 존재였던듯하다.


나의 아버지는 군청에 근무하시는 공무원이셨던 관계로 우리는 지방의 읍소재지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읍소재지라 할지라도 시골이라서 이웃과 가깝게 지내 서로 옆집 어른과 아이들까지 서로 알고 지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동네 이웃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한참 전 2살 터울의 바로 밑의 남동생과 같이 동네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 형제에게 떡을 주었다. 그때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남의 것을 얻어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옆집 아주머니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나 대신 동생에게 떡을 건네자 동생이 떡을 받았다. 나는 떡을 받는 동생에게 떡을 받지 말라고 소리치고 거칠게 말리며 동생을 울린 기억이 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으나 남에게 얻어먹는 게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당시 내 할머니는 청상과부로 내가 태어나기 오래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서 장남인 아버지를 비롯하여 6남매를 기르셨다. 내 부모와 할머니 사이는 고부간 갈등으로 항상 긴장상태였다. 나는 유년기였지만 정서적으로 항상 약자인 할머니 편이었다. 그러나 국민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어린이로서 내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항상 할머니가 불쌍해 보였다. 고부 갈등의 원인도 모른 채 할머니는 늙고 힘이 없어 보여 단지 불쌍해 보였다. 나는 그런 할머니 곁을 좋아했다. 불쌍해 보여 나라도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어린이가 나서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가치관이나 판단도 없었다. 할머니가 몸집도 작고 혼자 살고 늙고 불쌍해 보였을 뿐이다. 그래서 가끔 기회가 되면 나는 시골 할머니집에 머무르곤 했다. 이런 마음은 내가 청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동생들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나와는 생각이 전혀 달랐다. 할머니보다는 그저 자신을 직접적으로 돌봐주는 부모만 제일로 생각했다. 나의 신혼시절까지도 부모님의 고부 갈등이 지속되었는데 장남인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할머니를 서로 모시지 않겠다는 분쟁이 발생했다. 장남인 내 아버지와 할머니 관계가 악화되자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작은 아버지에게 증여하고 작은 아버지에게 가셨다. 그 후 작은 아버지는 장남이 할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버지는 재산을 받은 작은 아버지가 모셔야 한다고 다투었다. 그때 갈 곳 없는 할머니를 우리 부부가 할머니를 나의 신혼집에 모신적도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도 동생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거나 심정적으로 자신의 부모를 지지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나는 성격적으로 까칠한 편이었지만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편이었다. 막내 여동생 경희가 결혼하여 첫아이를 낳았는데 낳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는 증세가 있었다. 나는 당시까지만 해도 지극히 평온한 삶을 살아온 터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사건사고 등은 나와 다른 세상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가족에게 지적 장애를 가진 식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당신 경희가 입원한 대학병원의 담당의사가 마침 나의 고교 후배이어서 머리 조아리며 찾아가 방도를 찾아달라고 부탁도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살아오면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머리 숙여 본 적이 없었지만 내 조카가 장애를 가졌다는 자체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후배 담당의사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방법이 없다 하였다. 나는 언론에 오르내리는 불행한 사고가 나에게도 일어나는구나. 나도 불행한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구나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하느님! 앞으로 절대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불행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고 항상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겠습니다." 나는 당시까지만 해도 내게는 결코 불행이 닦치지 않을 거란 선민의식 비슷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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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필명은 如如(여여)입니다. 절개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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