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을 지을 준비

반세기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의 반응

by 여여

얼마 전 나의 SNS에 낯선 사람의 신상이 자주 노출되었다. 스팸성 노출이 많은 지라 그냥 지나쳤는데 어느 날 해당 인물로부터 친구요청이 왔다. 해당인물의 프로필을 봤는 데 공통점이 있고 스팸이 아닐듯하여 친구요청을 수락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연락이 왔는데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 후 중학교부터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 학교에 진학하였기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교류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단짝이었던 그 동창은 금방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기억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아주 오래된 초등학교 동창의 이름을 금세 기억해 냈다.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고 전화 통화를 하고 각자 사는 거주지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어찌 변했을지,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어색할 수 있을까 걱정되어 우리 둘이 서로 잘 아는 다른 동창 친구를 포함하여 만나기로 하였다. 우리는 초등학교 이후 거의 반세기 남짓한 세월 동안 각자의 삶을 살다가 노년이 되어 만났기에 각자 어찌 살아왔는지 등 지난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나는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온 터라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게 요즘 내가 동생들하고 겪었던 일화를 꺼내었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그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 친구는 집안의 맞이로 어려서부터 부모가 병환으로 생계를 이어가지 못해 자신은 시골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다니며 부모와 동생들을 돌보았단다. 중학교에서도 제대로 공부를 못하여 번듯한 고등학교에 진학할 실력도 못되던 차에 집안 생계를 책임지는 게 더 나을 듯하여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남의 가게 심부름하여 돈을 벌었다 한다. 자신이 번 돈으로 동생들을 학업을 돌보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 후 자신은 나이가 들어 야간 고등학교에 다녔고 결혼 후 야간 대학에 다녔다 했다. 지금은 동생들도 맏이의 헌신 탓에 모두 그런대로 먹고살만하다고 했다. 부모님은 모두 타계하셨지만 가끔 동생들과 만나면 마치 자신을 부모님 대하듯 한단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희생이 값지고 보람되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낀다 했다.

순간 나는 동창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동창 친구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안의 맞이로 부모. 동생들을 위하여 헌신해 왔는가 되돌아봤다. 물론 나에게 큰 희생이 요구된 적 없이 다복한 가정에서 자라 서로 스스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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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필명은 如如(여여)입니다. 절개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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