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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Feb 28. 2024

다정하게 일합시다

극단에 몰린 상황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정하게 말할 수는 있잖아요?

“현숙, answer.”

지난달 매출액이 왜 낮은지, 왜 그런 전략을 선택했는지 대답하라는 질문. 그 질문에 대해 비즈니스 상황을 설명한다 쳐도, 답은 상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즈니스 상황이 어떻든 간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나의 일이고, 매출액이 떨어졌다는 것 자체가 내 자질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한다. 그리고는 영어를 못해서 대답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냐며 면박을 주기도 한다. 누군가 그 상황을 도와주려고 대신 대답이라도 하려 치면, “No, I asked to 현숙, not you.”라고 말한다. 미팅에 있는 모두가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꽤 자주 이런 상황에 전시되고는 했다. 우리 브랜드의 market share가 1위고, 이미 몇십억의 광고비를 집행하고 있어 이 이상의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는 성숙한 시장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회사는 주주에게 배당금을 늘 줘야 하는, 그래서 늘 성장해야만 하는 것이 회사라 높은 숫자의 목표가 주어질 수밖에 없고, 달성하지 못한 목표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일을 처음 배울 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을 배웠었다. 그래서 아무도 야근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새벽까지 일을 하고, 아무도 공격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한 적이 없는대도 저런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다 보니 내가 먼저 상대에게 날 세우는 상황이 그려지고는 했다. 누군가 나를 무대에 세우기 전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고, 내가 이런이런 상황을 대비했음에도 상대가 이런 준비를 해주지 않아 이런 상황이 그려졌다는 것을 어필하고, 상대에게 대책이 뭔지 먼저 큰소리를 치고는 했다. 이런 상황을 잘 견뎌낼수록, 아니 견디기에 앞서 공격적으로 상황을 리드할수록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목표를 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해내고, 그것을 도와주지 못한 사람에게 문제 제기하는 것. 그것이 당시 내가 배운 살아남는 법이었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뾰족하게, 누군가를 다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어느새 나 역시 공격적으로 말하게 했고, 그날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그렇게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또 다른 누군가를 다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하는 법을 배우던 시간은 내게 꽤 힘들었지만, 어느새 어설프게 흉내를 내던 것을 넘어서 그들을 닮아버리기도 했었다. 박상영 소설의 한 문구처럼.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 그 당시에는 너무 공격적이지 않다며, “You will be eaten. (너는 잡아먹히고 말 거야.)”라는 말을 듣던 내가, 그곳을 떠난 이후에는 너무 공격적인 것이 아니냐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런 시간들을 겪었기 때문에 일하는 법을 빠르게 터득한 것도 맞지만, 이런 상황을 겪어야만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극단에 몰린 상황

그 회사를 떠나고 팀장이 되면서, 목표 달성에 대한 압박감을 겪으면서, 왜 내 윗사람들이 저렇게 공격적으로 말을 뱉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이 낭떠러지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잘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 각자의 자리에 서야만 보이는 것처럼 내가 극단에 몰린 상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과거의 내가 그 날카로운 말들에 얼마나 다쳤는지는 잊어버린 채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사람은 놓쳐버리기 시작했다다정하게 말하고, 상대를 기다리면서 의견을 주고받아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는 있었을 텐데, 상대를 기다릴 참을성이 부족해서, 나의 절박한 상황만 크게 보이면서 살아보자고 했던 욕심이 서로를 더욱더 낭떠러지 끝으로 밀어붙였을지도 모른다. 


퇴사를 앞두고 한 번도 웃지 못했던 팀원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내게 큰 질문을 던졌던 일이 있다. 나를 꽤 어려워했던 팀원, 긴장했던 탓에 실수가 잦았고, 그 실수가 비즈니스에 영향을 끼쳤는데, 나는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고, 실수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피드백을 줄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친절하게 말하지는 못했었다. 나 역시 과거에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들지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실수할 수도 있지.' 등과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줄 수는 없었다. 그 친구는 결국 퇴사를 결정했는데, 퇴사를 결정하던 주에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웃지 못했었다. 스타트업 특성상 여러 일을 함께 하다 보니 그 친구가 쇼핑 라이브에서 쇼호스트 역할도 맡게 되었는데, 한 번도 웃지 못했던 친구가 웃으면서 상품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친구의 속은 타들어갈 텐데, 웃으면서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사람을 밀어붙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주어진 과제, 비즈니스를 키우고 매달 매출목표를 가는 활동에만 집중하다 보니 사람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일들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잊은 채 한 푼 두 푼 더 버는 것에만 집중한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어느새 내가, 과거에 나를 힘들게 했던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날카로운 시간들은 결국 다시 돌아온다.

적어도 그날, 내가 사람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다정하게 말하고 일하게 되었지만, 내가 뿌려놓은 날카로움 들은 다시금 내게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이제는 나보다 더 날카로운 말들을 잘 내뱉게 된 동료, 이해관계에 따라 내게 등을 돌린 동료. 내가 어리석어서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다정하지 못한 순간들은 그 순간에도 나와 상대에게 상흔을 남기고, 결국에는 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상대도 나 역시도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서 나를 비난하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내가 다정하게 변했을지라도, 이미 받았던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게 내가 날카롭던 시절에 만났던 인연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떠날 때까지 우리는 다치고 또 다쳤다.  


극단에 몰린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다정하게 말할 수는 있잖아요?

그럼에도 그날 이후 계속해서 다정하게 일하고 있다. 느릴지라도 천천히 설명하고, 상대의 의견을 듣고, 너의 의견도 좋은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묻고, 의견을 합치해서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내고. 이제 내가 새로 다니는 회사는 내가 처음 일을 배우던 시절의 회사만큼 날카롭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서로 날 세우는 분위기가 종종 그려지는 곳이다 보니, 지금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되려 나의 다정함이 약점이지 않냐고 물어본 적까지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정글 같은 곳에서 가젤 같은 존재처럼 보일지라도 다정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고, 다정하게 말하고 그게 느릴지라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기로 했다. 조금은 더 친절하게 대하는 것만큼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이니까. 


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친절해야 한다. 네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는 중이니까.)

고대 그리스 격언 중 한 마디를 잊지 않으려 자주 되새긴다. 내가 그렇듯, 상대도 자신의 몫을 하기 위해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소중한 만큼, 나의 맞은편에 서있는 사람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극단에 몰린 상황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정하게 말할 수는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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