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에 몰린 상황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정하게 말할 수는 있잖아요?
일을 처음 배울 때 아무도 야근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새벽까지 일을 하고, 아무도 공격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먼저 상대에게 날 세우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었다. 이런 상황을 잘 견뎌낼수록, 아니 견디기에 앞서 공격적으로 상황을 리드할수록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목표를 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해내고, 그것을 도와주지 못한 사람에게 문제 제기하는 것. 그것이 당시 내가 배운 살아남는 법이었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뾰족하게, 누군가를 다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어느새 나 역시 공격적으로 말하게 했고, 그날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그렇게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또 다른 누군가를 다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하는 법을 배우던 시간은 내게 꽤 힘들었지만, 어느새 어설프게 흉내를 내던 것을 넘어서 그들을 닮아버리기도 했었다.
박상영 소설의 한 문구처럼.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 그 당시에는 너무 공격적이지 않다며, “You’ll be eaten. (너는 잡아먹히고 말 거야.)”라는 말을 듣던 내가, 그곳을 떠난 이후에는 너무 공격적인 것이 아니냐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런 시간들을 겪었기 때문에 일하는 법을 빠르게 터득한 것도 맞지만, 이런 상황을 겪어야만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극단에 몰린 상황
이후 팀장이 되어 목표 달성 압박을 겪으면서, 왜 내 윗사람들이 저렇게 공격적으로 행동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낭떠러지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잘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 각자의 자리에 서야만 보이는 것처럼 내가 극단에 몰린 상황이 보이자, 과거의 내가 그 날카로운 말들에 얼마나 다쳤는지는 잊어버린 채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사람은 놓쳐버리기 시작했다. 다정하게 말하고 상대를 기다리면서 의견을 주고받아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는 있었을 텐데, 상대를 기다릴 참을성이 부족해서, 나의 절박한 상황만 크게 보면서 살아보자고 했던 욕심이 서로를 더욱더 낭떠러지 끝으로 밀어붙였을지도 모른다.
퇴사를 앞두고 한 번도 웃지 못했던 팀원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내게 큰 질문을 던졌던 일이 있다. 나를 꽤 어려워했던 팀원, 긴장했던 탓에 실수가 잦았고 비즈니스에 영향을 끼쳤다. 나는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고, 실수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피드백을 줄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친절하게 말하지는 못했었다. 나 역시 과거에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있었고,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들지는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실수할 수도 있지. 다음에 더 잘해 보자' 등과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줄 수는 없었다.
그 친구는 결국 퇴사를 결정했는데, 퇴사를 결정하던 주에는 단 한 번도 웃지 못했었다. 그런데 스타트업 특성상 여러 일을 함께 하다 보니 그 친구가 퇴사를 앞두고 쇼핑 라이브에서 쇼호스트 역할도 맡게 되었다. 그 주 한 번도 웃지 못했던 친구가 웃으면서 상품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친구 속은 타들어갈 텐데, 웃으면서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사람을 밀어붙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주어진 과제, 비즈니스를 키우고 매달 매출목표를 달성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사람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동료가 사람이라는 것은 잊은 채 한 푼 두 푼 더 버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느새 내가, 과거에 나를 힘들게 했던 맞은편에 있던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날카로운 시간들은 결국 다시 돌아온다.
적어도 그날 내가 사람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다정하게 말하고 일하게 되었지만, 내가 예전에 뿌려놓은 날카로움들은 내게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이제는 나보다 더 날카로운 말들을 잘 내뱉게 된 동료, 이해관계에 따라 내게 등을 돌린 동료. 내가 어리석어서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다정하지 못한 순간들은 그 순간에도 나와 상대에게 상흔을 남기고, 결국에는 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상대도 나 역시도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서 나를 비난하기도 하면서 내게 상처를 남겼다. 내가 다정하게 변했을지라도, 이미 받았던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게 내가 날카롭던 시절에 만났던 인연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다 떠날 때까지 우리는 다치고 또 다쳤다.
극단에 몰린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다정하게 말할 수는 있잖아요?
그럼에도 그날 이후 계속해서 다정하게 일하고 있다. 느릴지라도 천천히 설명하고, 상대의 의견을 듣고, 너의 의견도 좋은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묻고, 의견을 합치해서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낸다. 이후 다시 목표 달성이 중요한 조직으로 이직했더니, 이제는 되려 나의 다정함이 약점이 되고는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정글 같은 곳에서 가젤 같은 존재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다정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고, 그게 느릴지라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기로 했다. 조금은 더 친절하게 대하는 것만큼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이니까.
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친절해야 한다. 네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는 중이니까.)
고대 그리스 격언 중 한 마디를 잊지 않으려 자주 되새긴다. 내가 그렇듯, 상대도 자신의 몫을 하기 위해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소중한 만큼, 나의 맞은편에 서있는 사람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회사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곳이니, 다정함을 놓치지 않되 휘둘리지 않는 것이 마음 단단히의 핵심이다.
극단에 몰린 상황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정하게 말할 수는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