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씨앗을 찾고 키워내는 법
드디어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었다.
오늘 마지막 출근을 했다. 감사했던 분들께 인사도 드리고 노트북과 사원증도 반납했다. 두 번째 글로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 고민하다, 회사 밖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글쓰기’라는 씨앗을 어떻게 찾고 키워나갔는지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년 동안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동생과 자주 이야기 나누었는데, 직장인 3년 차가 된 동생은 내 계획을 들을 때마다 부럽다고 했다. 자신은 이제 막 회사에서 무엇을 할지 정했고, 회사 밖에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 무엇을 못 찾았는데 언니는 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한 게 부럽다고 했다.
나의 처음이 어땠나 돌이켜보다 이번 글에는 내가 글쓰기라는 씨앗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키워나갔는지 정리해 보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쓸 만큼 글쓰기로 돈을 엄청 번 것도, 유명한 것도 아니라 스스로 제동이 걸리기도 하지만, 한 발짝 앞에서 회사 밖에서 하고 싶은 무언가 있는 단계니까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씨앗은 있다.
일을 시작하고 3~4년 차쯤, 일이 손에 익어 일 외의 다른 것을 고민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은 내가 일 외에 딱히 관심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커피가 좋으면 커피숍을 하고, 손재주가 좋으면 공방을 차릴 텐데. 그렇다고 회사 일에만 올인할 수도 없었다. 일하는 나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일하는 나를 좋아한다는 말과 회사를 좋아한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회사 밖에서 무언가 시작하고는 싶은데 나는 일하는 것 말고 다른 것은 관심사가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라, 일을 시작하고 깨닫는 것들은 너무 많았다. 깨달은 것들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은 일을 시작한 직후부터 있었지만, 글들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짜풀짜풀 시도만 하다가 멈춘 적이 많았다. 회사에서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던 것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방향은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회사의 누군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제동이 걸리기도 하고, 글로 써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 보니 끝맺음을 하지 못한 게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직장인 2대 허언처럼 하던 말은 글 써야지, 내 사업해야지였다.
그냥 시작하는 마음
왜 나는 시작을 못할까?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지 찾느라 시작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는 것이 반복됐다. 그러다 내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다.
하고 싶다고 말만 하는 것도 지겹다.
그냥 하자.
몇 개월을 주기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또다시 멈춰버린 기록들을 다시 보는 게 스트레스여서, 모르겠고 그냥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였다. 적어도 뭘 쓰고 싶어 하는지 방향은 있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쓰기만 하면 되니까 쉬워 보였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처럼 느껴졌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멈춰놓았던 여러 초안들 중에 제일 마무리하기 쉬운 글을 골라 마무리하고 브런치에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무언가를 마무리한 경험이 생겼다. 일을 시작한 직후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는데, 남들이 볼 수 있는 글로 쓰는데 5년이 걸렸다.
그리고 회사에서 배운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했지만, 처음에 쓸 수 있는 글은 일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렇게 19년에 글 1개를 겨우 쓰고, 20년 초에도 드문드문 글을 쓰다가, 드디어 ‘매니저에게 질문하는 법’이라는, 내게 있어 끓는점이 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글을 몇 편 마무리하며 ‘아, 이렇게 쓰면 되는구나’ 싶은 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의 나처럼 일에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보는데 이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이제야 내가 오래도록 쓰고 싶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구나 싶었다. 어떻게든 글을 써내면서 마침표를 찍는 연습을 했고 회사 일에서 글감 같은 순간을 만나면서, 드디어 내게 끓는점이 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글을 시작으로 마케터의 일, 회사에서 배운 것들에 대해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년에 쓴 글들이 기회가 되어 21년 퍼블리 저자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22년에 출간계약도 하고 23년에 ‘그렇게 진짜 마케터가 된다’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5년 오늘, 두 번째 책 출간도 앞두고 있고 직장인 신분을 잠시 멈추고서 글쓰기에 시간을 투자해 보자는 결정도 하게 되었다.
시작을 해야만 앞으로의 방향도 알 수 있다.
그동안은 사업도 그렇고, 내가 방향을 명확히 알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처음에 마케터로 알게 된 것들을 쓰고 싶어 했고, 한 번 다 써놓고 나면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써야 할 내용은 더 정교화되고 늘어났다.
글을 쓰기 전에는 어렴풋이 마케터의 일에 대해, 그리고 회사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운 것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글을 5년간 써오면서 내가 왜 마케터의 일을 쓰고 싶어 하고, 왜 회사에서 배운 것들을 쓰고 싶어 하지? 를 고민하다 보니, 이제는 내 머릿속에 이런 글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 일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잃지 않고 ‘나답게 일했으면’하는 마음이 있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나답게 일하려면 1) 내게 맞는 일을 찾고, 2) 그 일을 잘해야 하고, 3) 마음 단단히 일해야 하니까. 그래서 내가 그런 글들을 계속 쓰고 있었구나 깨닫게 되면서, 더 새롭게 쓰고 싶은 이야기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소설 같은 이야기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는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몇 년 주기로 글이 하나씩 나오다가, 내가 반복적으로 쓰는 글의 주제 (마케터의 일, 회사에서 배운 것들)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갈래들이 늘어나고, 모든 글들이 가리키는 하나의 핵심 키워드 (내게는 ‘나답게 일하기’)를 찾게 된다. 그렇게 시작하고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 회사 밖에서 자신의 일을 찾는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 3가지다.
1. 하고 싶다는 생각, 작은 씨앗을 놓치지 않기.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내 안에 할 수 있는 힘도 있다. 마음의 소리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초년생 때 일하는 내가 좋고 회사에서 배운 것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작은 생각이 모여, 모든 사람이 나답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커왔다. 이 생각은 스스로 씨앗을 찾고 물을 주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마음이었다.
2.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 하고 싶은 것이 너무 어려워 보여서, 처음부터 잘하고 싶어서, 무엇을 당장 해야 할지 몰라서 등 많은 이유로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일단 시작하는 것, 그래서 마침표를 하나라도 찍어보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했으면 한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길러지니까.
3. 그리고 내 일상으로 가져오기. 글을 쓰던 초반만 해도 글을 써야겠다 각을 잡고 몇 일을 괴로워하다 겨우 하나를 썼다. 그리고 그런 글 쓰는 시간이 1년에 어쩌다 몇 번이었다. 글을 쓸수록 쓸 이야기가 늘어나듯, 글 쓰는 행위도 점차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24년에는 주말마다 글을 쓰다가 25년부터는 매일 아침 적어도 1시간씩은 글을 쓰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글쓰기가 일상이 되고 나니, 어제도 글을 썼고, 오늘도 썼고, 내일도 그냥 당연히 해야할 일이 되어간다. 그리고 일상이 되는 순간 글 쓰는 것은 내 정체성이 되었다.
씨앗을 찾지 못한 분이 있다면,
그리고 아직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이 이야기도 해드리고 싶다. 지금 나의 가장 큰 정체성은 글 쓰는 사람인데,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나에 대해 잘 알게 되었는데, 내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대학생 때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일을 시작한 직후에 몸으로 부딪히면서 얻게 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학생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내게 문장들이 쌓이는 속도가 달라졌다. 인풋이 늘어나면서 기록의 양도 늘고, 무언가 부딪히며 배울 때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걸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기 전까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래서 누군가 아직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먈한다면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씨앗이 발현될 때까지, 나를 기다려주는 것은 어떨지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씨앗을 찾고 작더라도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그걸 반복하면 씨앗은 자란다. 그리고 그걸 매일 반복하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기며 나의 정체성이 된다. 작은 도미노가 큰 도미노를 밀어트리듯, 작게 시작한 글이 잠시 본업을 멈추고 쓸 만큼 커졌다. '나답게 일하기'와 관련된 글들도 다 털어놓고 나면, 또 새롭게 쓰고 싶은 글들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회사 밖에서 내 일을 찾는 법에 대해 정리했다. 다들 무언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시작하지 못하는게 있다면 같이 시작해도 좋겠다. 내게는 그게 5년 전에는 글쓰기였고, 이제는 인스타그램이기도 하다. 매일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그리고 이 글들을 어떻게 쓰는지 인스타그램에 기록해 보면 좋겠다 늘 생각은 하면서도 쉽게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5년 전에 깨달았던 것처럼 그냥 시작하면 되는데, 그냥 한다는 것이 제일 어렵다 싶다. 일단 오늘 포스팅부터 올려야겠다.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