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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먼트>를 읽고

내려놓음, 그 새로운 관점에 대해

by Onda

장재열 작가님의 마음건강 3부작 마지막 책 <오프 먼트>를 읽었다. '오프 먼트'는 ‘일과 삶에서 스스로 스위치를 끄고 켜는 힘’이라고 설명되는데, 목표가 너무 간절해도 일이 터져도, 지금은 밥 먹을 시간이니까 지금은 잘 시간이니까 내 일상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 정리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그렇게 애쓰기만 하는 것이 맞는지 다른 방법은 없을지 한 번 점검해 보자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었다.


참고로 마음건강 3부작 중 하나인 <마이크로 리추얼>을 읽고 남긴 기록은 여기에.

https://brunch.co.kr/@236project/146


러닝머신 대신 무빙워크

나도 애쓰며 살아온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왜 애를 쓸 수밖에 없을까 돌이켜 보면, 나는 회사 생활이 러닝머신 위의 삶 같다고 생각했었다. 일정 속도 이상으로 무조건 뛰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도태되는 곳. 그래서 늘 애쓸 수밖에 없었다. 장재열 작가님도 예전에는 러닝 머신 위에 있었지만 이제는 발걸음이 무빙워크 위로 옮겨간 느낌이라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도착할 거라는 걸 알고 나 자신을 믿으며 나아간다는 것. 더 빨리 가고 싶으면 더 걷는 것, 그러지 않아도 가만있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 세상을 이렇게도 볼 수 있다는 것, 러닝머신과 전혀 반대되는 표현이라 놀랐다.


내려놓음의 순간들

이 책에서는 내려놓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목표를 낮추라는 말이 아니라, 목표는 그대로 둔 채 과도한 긴장 상태를 내려놓는 것을 말한다. 태도와 방식을 느슨하게 강박을 내려놓으라는 것.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목표가 달성되었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라 했다.


내게도 내려놓음 끝에 성취했던 경험이 있는데, 첫 번째 경험은 스무 살 반수 시절이었다. 고3 때만 해도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그 목표에 시선이 뺏겨 오늘은 미래를 위한 투자일 뿐, 하루하루를 괴롭게 애쓰기만 했다. 그러다 스무 살 반수를 할 때는 목표에 목매달지 않고, ‘오늘 할 공부를 다 했나? 그럼 되었다.’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음에도 떨어진다면 내 길이 아닐 것이다. 이미 열심히 산 것에서 보상받았다’라는 마음까지 경험했고, 역설적이게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었다.

장재열 작가도 삼수를 하면서 애쓰기만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 내려놓음이 필요했다고 깨달았음에도, 그 당시 깨달음이 어떤 원리인지,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갔다고 했다. 그 이후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다시 애쓰는 강박적인 삶으로 관성처럼 돌아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고생했다고 했다.


깨달음은 끓는 물과 같아서

나 역시 그랬다. 스무 살 반수 때를 돌이켜 보면,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반수를 하는 것이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나는 최선을 다했고 별 수 있나 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진짜 목표를 인지하고 내려놓는 마음으로 살았던 덕분에 원하는 것을 얻었음에도, 이후 대학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시 남들의 시선에 속았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회사에 가고자, 그리고 그 회사에서 버티고자 갖은 애를 다 썼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점심시간에도 모니터 앞에서 김밥을 꾸역꾸역 먹으며 일하고, 막차가 끊긴 시간까지 야근하며 계속 채찍질했었다.


'이렇게까지 애쓰는 것이 실은 남들의 시선에 그럴싸해 보이기 위해서 아니었나?'라는 것을 몇 번 깨달았음에도 큰 선택을 앞두고서는 매번 내게 속아버렸다. 내가 원한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직접 경험해 보고 한두 꺼풀 벗겨내고 나면 남들의 시선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를 여러 번. 왜 자꾸 내게 속을까? 깨달았지만 왜 다시 돌아올까? 가 내 고민 중 하나였는데, 이 책에서 깨달음은 단계가 아니라 상태라 했다. 크게 와닿은 표현이 있었는데, 깨달음은 끓는 물과 같아서 계속 장작을 넣지 않으면 다시 본래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초심자의 행운처럼 깨달음을 한 번에 얻었을지라도, 어떤 원리로 그걸 얻었는지 정확히 알아야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 깨달음의 경험을 더 들여다 보고 비슷한 상황에서 반영해 보는 것을 게을리했을 뿐,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서 다시 관성으로 돌아왔을 뿐이라고 책에서 말했다.


무엇을 위해, 왜 그렇게까지 애쓰는 걸까요?

그래서 그 깨달음의 원리를 알기 위해 질문들을 던져보자고 했다. 그전에 먼저 우리가 애써 갖고 싶은 목표가 정말 원하는 게 맞는지, 단순히 나의 강박적 판단은 아닌지 구분해 보자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래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마다 애쓰며 살아가는 이유가 다를 것이라, 이 질문에 답을 보고 각자의 방향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애쓰는가?
왜 이렇게까지 애쓰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애쓰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하는데, 나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지는 않았다. 승진을 꿈꾸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내 일이니까, 회사라는 곳은 늘 증명해 내야 하는 곳이니까 처럼 별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애쓰는 이유가 외부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회사라는 곳은 늘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이번 달 목표를 달성해도 다음 달 1일이 되면 리셋, 다시 달려야만 하는 곳이니까. 책에서는 '힘들다'를 처음 인지하는 순간 힘을 빼자고 하는데, 회사라는 공간은 이럴 때 힘을 빼면 잘리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애를 쓰지 않을 수 있지? 등의 질문이 생겼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부적인 이유였다. 만약 외부적인 이유만 있었다면 객관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버티는 것만 선택할 것이 아니라 그만둠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버티는 것을 선택했는데, 커리어 공백기가 생기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책에서 달리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또 다른 하나는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가기 위해서. 나는 목적지보다는 피하고 싶었던 장면이 있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모습은 결국 내 쓸모를 증명하지 못해 커리어가 끊기고 집에만 있는 모습, 경력은 단절되어 어디서도 나를 찾지 않고 매일이 반복처럼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년생 때는 아직 나를 지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있어 보이는 회사를 경험해야 이런 위험에서 멀어지니까 버텨야 했고, 11년 차가 된 지금 시점에서는 그런 위험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뿐이지 여전히 두려워하는 모습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 내 마음속에서 '지금 상황이 힘들다, 버겁다'는 경고음이 울려 퍼져도 (늘 이런 경고음은 빠르게 인지했지만) '버텨보자'라고 꾹 누르기만 했다. 커리어가 끊겨서 내가 무가치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당신의 미래 예측은 대부분 틀릴 거예요.”

그러다 이 문장 또한 만났다. 나는 그냥 회사를 그만두면 커리어가 끊길 것이다, 커리어가 끊기면 나는 무쓸모 해질 것이다 같은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 독이 되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늘 버티는 것을 선택했던 것은 내가 미래를 속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은 나는 일보다 크니까, 일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돌보는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결과를 내지 않으면 쓸모없다, 나 혼자 만족하는 삶은 가치 없다고 생각해 온 것 역시 나의 강박 관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에서는 이런 강박이 정말 사실인지 되짚어 보자고 말한다. 그리고 진짜 목표를 찾자는 것. 진짜 목표는 남들 눈에도 그럴싸해 보이는 커리어가 끊기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냥 나답게 일을 계속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더 나아가 커리어가 진짜 끊긴다 해도, 내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글쓰기를 매일 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닌지. 그래서 진짜 목표를 향해 가면서, 우리 일상에 중간중간 일 스위치를 끄는 시간을 가지자는 것이었다.


오프 먼트, Off moment

책에서는 잠시 일 스위치를 끄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안을 했다. 핸드폰도 챙기지 않고 그냥 자연을 보면서 환기하는 시간을 갖는 빈손 산책. 케렌시아 - 오롯이 나 혼자 쉴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어놓고 쉬는 것. 나만의 아지트를 갖는 것은 내가 이미 잘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내게는 다이어리에 내 생각을 끼적이는 시간이었다. 내가 이런 게 힘들구나, 저런 게 좋구나 떠오르는 대로 쓰고, 장소는 카페면 더 좋고 아니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탁이기도 하고 - 옆면이 둥글어서 손으로 한 번 훑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리고 내가 나와 함께 하고 있구나를 인지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의식적 혼자 있기. 1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다독이고 회복을 고민하면서 나만의 방법들을 이미 찾아내고 있었구나 싶었다.


“어떻게든 되겠죠.”

연차가 쌓이면서 회사 일에는 조금은 의연해져, 일이 터졌지만 뭐 어째 지금은 밥 먹는 시간인데 하는 내려놓음이 조금씩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삶은 계획대로 나아가야 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플랜 B, C 들을 만들면서 애썼다. 내 계획과 어긋나는 일이 생길 때면 마음속에 ‘어떡하지?’라는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이제는 '어떻게든 되겠죠'라는 마음, 나도 보통 사람인지라 애쓰고 강박적인 삶으로 돌아가기 쉽겠지만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해야겠다 싶다. 목적지가 있고, 시간이 다소 지연될지라도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란 믿음.


장재열 작가님의 <오프 먼트>는 그런 이야기를 작가님이 옆에서 직접 들려주듯 쓴 책이었다. 마음 건강 예방, 마음이 무너지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 나도 이 주제에 관심이 있어 장재열 작가님이 책을 낼 때마다 열심히 읽고 있는데, 나는 회사라는 공간 - 수익을 내는 것이 존재 이유인 곳에서 마음 건강이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늘 하는 것 같다. 내부적으로 내가 아무리 이유를 찾고, 오프 먼트를 하며 나를 돌보려 해도, 외부적으로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그려지면 나를 돌보기 어려우니. 균형을 찾을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일까 하는 고민이 남기는 한다. 그럼에도 내가 외부 환경을 쉽사리 바꾸지 못하고 애씀을 선택했던 이유가 내부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의미 있었다.


‘나는 일보다 크다는 것’, 내가 진짜 지향해야 할 목적지를 잘 정의하고 애씀과 내려놓음의 균형을 잘 찾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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