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희생과 은폐의 구조
영웅의 출현은 우리 공동체가 실패했다는 뜻이다
올해의 유난스러운 무더위에 이어 뒤늦은 폭우가 내렸다. 재난문자가 계속 쌓여가고 비극적인 소식이 미디어를 통해 전해졌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우리가 매년 ‘영웅의 죽음’을 대면한다는 것이 기억났다. 위기상황에서 누군가는 우리 모두가 회피한 위험을 감당했고 그 와중에 불행히도 희생되었다는 그 뉴스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 호칭하면서 사건은 즉시 감동적인 이야기로 재구성되어왔다. 하지만 그가 감당해야 했던 위험은 한 개인의 용기로 축소되고 요약되어 전달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같은 시스템의 구조속에서 또 다른 이의 죽음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은 특정한 한 개인에게만 밀착된 고립적 사건이라 볼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위험이 분산되지 않은 채로 비교적 취약한 위치 또는 의무에 있는 이들에게만 집중된 결과인 것이다. ‘영웅’은 그들이 몸소 그 위험을 감당했다고 말하기에 앞서 온몸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된 위치에 놓였을 뿐이라는 것을 가리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도록 하고, 결국 우리의 관심을 앗아간다.
‘영웅’이라는 말이 은폐하는 것
이렇듯 누군가의 안타까운 희생 앞에서 호출된 ‘영웅’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인 은폐장치가 된다. ‘영웅적 희생’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무능과 정치적 무관심을 단선적 감정으로 감싸버린다. 영웅은 우리 공동체가 미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윤리적인 실패’를 영웅화해 상징적으로 만듦으로써 보상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감당하고 보완해야 했던 위험을 누군가에게 조용히 전가시켰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우리가 분산시키지 않은 위험은 그 책임도 분산되지 않는다. 죽음으로 희생된 자를 칭송함으로써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시스템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윤리의 붕괴와 공동체의 실패
위험은 예외적인 것이라 볼 수 없다. 현재 시점에서 재난이나 위험의 공적 취약성은 시스템의 내부에 대부분 내재되어 있다. 그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곳에는 개별성이 지워진 채 직무의 이름으로만 불리는 이들이 전진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 건설 현장과 병동, 배달 노선 그리고 범죄와 구조의 현장, 돌봄 기관 등 공공 안전의 취약한 균열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이다. 그리고 비극의 발생 앞에서 윤리적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슬픔의 소비가 일어난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는 사회는 결코 공동체라 할 수 없다.
위험은 재분배되어야 한다
공동체란, 구성원중 어느 누구도 홀로 위험을 감당하지 않도록 만든 장치가 원활하게 작동되는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윤리적 사회란 ‘영웅이 필요 없는 구조’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서 영웅의 등장이란 우리가 공동체로서 위험의 재배치와 책임 분산에 실패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 ‘사람’이 그 공백 속에서 소멸되었음을 뜻한다.
심상찮은 기후위기와 반복되는 재난 앞에서 이제 더 이상 영웅의 출현이 없기를 소망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감동으로 소비하기 전에 그(혹은 그녀)가 ‘살아 숨 쉬는 상태’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바로 윤리의 시작이자 정치의 기초다. 또한 공동체가 존립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