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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넥도트

성내동 편의점

사라진 자리에서

by 투명인간

창밖 태권도장의 기합 소리에

비몽사몽으로 눈이 뜨인다.

건물 아래 작은 편의점 하나.

아침 공기처럼, 나는 늘 그곳으로 향했다.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요란한 종소리가 먼저 나를 알아본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익숙한 냄새가 하루의 시작처럼 피어난다.


카운터에는 눈으로 먼저 웃는 할머니가 계셨다.

얼음컵과 커피를 들고 다가가면

그분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채웠다.


“오늘도 커피? 아니면 담배?”


그분에게 나는

수많은 손님 중 한 명이 아니라

‘커피 청년’이었다.

그 별명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옆에는 늘, 같은 자리에

아르바이트생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담배 한 갑을 찾는 데에도

잠시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그 느린 속도가

이곳의 고유한 리듬이었다.


포스기가 고집을 부릴 때면

잠시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손님이 나간 뒤에는

할머니의 어깨를 조심스레

주물러 드리던 분이었다.


이 작은 편의점에는

일과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는 이미 사라진

따뜻한 구멍가게의 온기가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나는 그곳에 들르지 않게 되었다.

그 짧은 공백이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다.

전역 후 다시 그 길을 찾았을 때

편의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엔 아직 사람의 체온도 묻지 않은

새 커피숍이 올라와 있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나를 부르던 목소리도 사라지고

문만 조용히 열어주는

차가운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제야 알았다.

사라진 건 편의점이 아니라,

내가 잠시 기대고 살던 온기였다.

그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는

새파랗게 반짝였지만

어쩐지 한없이 비어 보였다.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사람이 남긴 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바꿔놓고 간다.

남은 건, 기억의 빈자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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