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생성형 AI를 써서 게임 만들기
제가 하고 있는 일 중 하나는 게임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기술 적용 사례를 발굴하고, 이를 공유하는 콘퍼런스를 기획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준비하면서 늘 마주하는 가장 큰 과제는 하나입니다.
"대외적으로 공개 가능하며, 게임사의 관점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용 사례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특히, 생성형 AI는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비공개이거나, 이미 널리 알려진 사례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생성형 AI를 사용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습니다.
소규모 팀인 8명으로 구성된 Jam & Tea Studios가 단 6개월 만에 출시한 "리테일 메이지(Retail Mage)"입니다.
"리테일 메이지"는 단순히 생성형 AI로 콘텐츠를 자동 생성하는 게임에 그치지 않습니다. 개발팀은 더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AI가 사람처럼 맥락을 이해하고, 플레이어의 의도에 실시간으로 반응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심심해요"라고 말하면, NPC는 “숨바꼭질할래요?”라고 제안하고, 주변의 다른 NPC들도 자발적으로 이벤트에 참여합니다. 준비된 스크립트 없이 AI가 맥락을 해석하고 즉석에서 상황극이 펼쳐진 거죠.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개발팀은 확신을 얻었습니다.
“생성형 AI는 단순한 생성 도구가 아니라, 게임 마스터(Game Master)가 될 수 있다.”
해당 게임의 핵심은 즉흥성(improvisation)입니다. 이 게임은 게임 유저가 무엇을 하든, AI는 그 의도를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게임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게임은 미리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대신, AI가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여 게임의 흐름을 이끌어갑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IOU를 줄게요”라고 말하면, AI는 게임의 설정과 캐릭터 상태를 바탕으로 이게 타당한 해결책인지 스스로 결정합니다. 이건 단순한 조건 분기나 퀘스트 트리거가 아니라, 맥락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디자인을 실현한 것입니다.
캐릭터 설정 역시 몇 개의 키워드만 입력하면 AI가 그에 맞는 성격과 배경을 생성하고, '기억'도 유지합니다. 예를 들어, “용감한”이라는 특성을 가진 캐릭터는 게임 내 위기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등 게임 세계와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또한, 플레이어와 NPC 간의 대화도 대사 선택지가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음성이나 텍스트로 말을 걸면, AI는 톤과 맥락을 이해한 채 자연스럽게 반응합니다.
개발팀은 이처럼 "정해진 행동을 수행하는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상상력에 따라 세계가 반응하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단 6개월 만에 스팀을 통해 출시된 이 게임은 혁신적인 AI 중심 설계로 주목받았지만, 시간과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데모 버전과 유저들이 기대하는 게임 사이의 어딘가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 개발팀의 회고입니다. 개발팀이 밝힌 현실적인 제약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
먼저, AI 중심 설계로 인해 기본적인 UI 요소, 익숙한 시스템이 상당 부분 생략되었습니다. 플레이어는 버튼 대신 텍스트 입력 위주의 UI를 접하게 되었고, 이는 기존 게임 문법에 익숙한 유저들에게 불편함을 넘어서 진입 장벽으로까지 작용했습니다.
또한, AI가 너무 ‘인간적’으로 반응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AI NPC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버리거나, NPC가 플레이어를 무시해서 게임 유저가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처럼 느껴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등장합니다. 실시간 AI 추론 (inference)입니다.
생성형 AI 게임에서 "추론" 이란 주어진 정보와 규칙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황에 맞는 해결책이나 행동을 도출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창의적인 콘텐츠를 생성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추론 과정은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말하거나 행동할 때마다, AI는 그 입력을 “토큰 (token)” 단위로 분해해 맥락을 파악하고, 새로운 응답을 생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몇 가지 이슈가 발생합니다.
첫 번째 이슈는 물리엔진과 AI 추론 속도의 차이였습니다.
쉽게 말해 물리엔진은 게임이 1초에 60번 이상 눈을 깜빡이며 움직이는 시스템입니다. 반면 AI는 매번 플레이어 말을 듣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사람’처럼 작동합니다. 이로 인해 AI가 반응하기도 전에 게임 세계가 이미 몇 초씩 지나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게임의 리듬을 AI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재조정해야 했습니다.
더 큰 이슈는 이게 비용이 든다는 겁니다.
모든 상호작용(interaction)이 있을 때마다 서버에서 LLM이 작동해야 하며, 이때 사용되는 토큰의 수가 많을수록, 그리고 사용 모델의 사이즈가 클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개발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모델 최적화와 오픈소스 툴을 도입해 효율을 높였지만, 완전하게 해결되진 못했습니다.
이러한 과제들은 단순히 해당 게임의 문제가 아닌 생성형 AI "로" 게임을 만들 경우 풀어야 하는 숙제로 남겨져있습니다.
개발팀은 “게임은 크리에이티브한 공간이며, AI는 이를 확장하는 도구”라는 철학을 실현했습니다. 그러나, 이 실험이 플레이어에게 ‘재미있는 경험’으로 다가갔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AI는 매우 창의적이지만, 모든 플레이어는 항상 창의성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유연한 시스템은 오히려 불확실성과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으며, 혁신성이라는 이름으로 플레이어에게 학습을 강요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는 게임 본래의 ‘서비스’라는 본질에서 벗어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게임 사업을 하며 우리가 처음 배우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게임은 서비스다” 그리고, “유저는 옳다”.
그리고, 해당 사례는 그 원칙을 다시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생성형 AI로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은 분명 야심 찬 시도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를 통해 우리는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
“우리는 AI를 중심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AI를 ‘활용’하고 있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게임 사업에서 기술의 혁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혁신이 실제 게임 유저의 경험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게임 유저는 항상 서비스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단계는 AI기술을 넘어서 어떻게 ‘서비스’를 만들어 갈 것인가입니다.
* 위 내용은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문에서 언급된 기업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