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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 직장인

공장에서 태어난 근대적 노동자

by SWEL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계와 공장의 등장을 넘어 인간의 노동과 삶의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조직했습니다.


1차 산업혁명이 농부를 공장 노동자로 만들었다면, 2차 산업혁명은 그 노동자에게 또 다른 이름을 주었습니다. 바로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입니다.


대량생산과 표준화가 본격화되면서, 노동은 더 이상 개인의 기술이나 경험만으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조직 안에 배치된 ‘역할’로 기능했고, 기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서로 연결되어 움직였습니다.


한 사람의 몸짓은 이제 전체 시스템을 유지하는 하나의 작은 동작일 뿐이었습니다. 개인의 능력과 개성은 희미해지고, 중요한 것은 정해진 자리에서 얼마나 규칙적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직장인의 하루는 철저히 시간의 규율 아래 놓였습니다.


아침의 출근 종, 정해진 근무 시간, 점심 종, 다시 업무, 그리고 퇴근 시간. 하루는 시계의 바늘에 의해 잘게 쪼개졌고, 인간은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하늘과 계절을 보며 일하던 농부와 달리, 직장인은 공장의 종소리와 사무실의 벨에 따라 하루를 살아야 했습니다.


시간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었고, 조직이 부여하는 리듬에 맞춰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은 단순한 일터를 넘어 집단 규율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보고 체계와 상명하복, 성과에 따른 평가와 서열은 조직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규제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점차 인간은 ‘나’라는 개인보다 ‘부서의 일원’, ‘직위에 맞는 사람’으로 정의되었습니다. 이름보다는 직함이 먼저 불렸고, 개성보다는 직무가 우선되었습니다. 직장인의 정체성은 곧 조직 속에서 주어진 역할이자 규율에 순응하는 태도로 굳어져 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안정과 불안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한편으로 직장은 꾸준한 임금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일정한 수입은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안정성을 주었고, 조직 안에서 경력을 쌓으며 전문성을 발휘하는 길도 열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직장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제한했습니다. 조직의 목적이 곧 개인의 목적이 되어야 했고, 창의성과 개성은 종종 규율 속에 묻혔습니다.


익명성 또한 직장인의 특징이었습니다. 농부 시절에는 ‘누가 씨를 뿌렸는지’, ‘누가 수확했는지’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공장과 사무실에서 생산된 결과물은 누구의 손길인지 식별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집단의 성과이자 조직의 산물이었고, 개인은 그 안에서 쉽게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나는 조직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직장의 세계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는 땅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삶의 차이를 결정했지만, 직장 사회에서는 노력과 경력, 그리고 조직 내에서의 성과가 더 나은 자리로 올라설 수 있는 길, 곧 신분과 생활 수준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비록 조직에 종속된 이름이었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은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교육을 받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직장 문화 — 출퇴근, 근무 시간, 보고 체계, 상하관계 — 는 이 시기에 형성된 틀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이제 이 구조를 선택하거나 벗어날 여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 플랫폼 노동자는 ‘직장인’이라는 이름을 거부하거나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의 산물입니다.


결국 2차 산업혁명이 남긴 교훈은 명확합니다.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은 본래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산업 사회가 만든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개인은 조직에 종속되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장 문화의 변화 속에서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조직의 규율 속에서 얼마나 나 자신을 잃지 않고,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1차 산업혁명이 농부를 공장 노동자로, 2차 산업혁명이 노동자를 직장인으로 바꾸었다면, 이제 AI와 디지털 전환의 시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 부름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나는 조직의 규율 속에서만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과 시대를 도구 삼아
나의 삶을 다시 설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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