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넘어서는 자족(自足)과 인정(認定)
가시 없는 장미 갖고 싶다는
당신은
욕심쟁이입니다
예쁜 장미 가지려면
따가운 가시는 감당해야지요
눈물 없는 사랑 하고 싶다는
당신은
순진한 욕심쟁입니다
이별 없는 사랑 지키려면
가슴 아픈 눈물은 각오해야지요
미움 없는 세상 살고 싶다는
당신은
바보 같은 욕심쟁이입니다
사랑과 용서가 가득한 세상에도
미움은 여기저기에 숨어 있으니까요
출산의 고통 없이 예쁜 아이를 갖고자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노력 없이 성공하고자 하는 것도 욕심입니다. 무언가 좋은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는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욕심쟁이가 있습니다. 그중에 양쪽을 다 취하려는 사람, 그래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그 한 부류일 것입니다.
내 아이는 공부는 잘하는데 운동에 소질이 없어. 내 아이는 인성은 좋은데 공부를 못해. 내 남편은 성실한 사람인데 능력이 부족해. 내 아내는 음식은 잘하는데 청소를 잘 안 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만약 이 위에 것들을 다 잘하고 다 가졌는데 암에 걸렸다면?” 이 질문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해도 과연 욕심을 부릴지 궁금합니다.
한 가지를 잘하면 다른 한 가지에는 재능이 없거나 부족할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말입니다. 학창 시절 수학이나 영어를 똑같이 잘했던 친구가 드물었던 것처럼. 학창 시절 인물도 인간성도 함께 갖춘 친구가 드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부모들의 바람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인간성도 좋고, 축구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그림도 잘 그리기는 쉽지 않을 텐데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렇게 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자칫 그 바람을 멈추는 시기를 놓쳐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전 11:4)
완벽한 때가 없듯이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다른 것을 못할 확률도 높으니 다른 분야의 열등을 담대히 감당하면 서로가 좋을 것을 말입니다.
‘사람 욕심의 끝이 어디일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욕심의 끝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내린 결론은 자족(自足)과 인정(認定)입니다.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지혜롭게 사는 길은 내게 있는 재능에 감사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이 하나의 방법이요, 내게 없는 재능에 아쉬워하기보다는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 하나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선택과 집중이 쉬워집니다. 키 큰 농구선수가 승마까지 잘하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그리고 장차 큰 키로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자동차와 비행기를 탈 때 비좁은 불편함 정도는 각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