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허전함에서 평온함으로
도시의 정적과 어린 시절의 허전함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때로는 혼자인 듯 느껴졌던 도시의 어린 시절. 대가족이었지만 아침이면 가족은 출근하거나 학교로 떠났고, 할머니마저 마실을 나가신 뒤에는 고요한 집에 나 혼자 남아있어다.
그 시간의 정적은 너무 완벽했다. 시계 초침 소리만이 방 안을 울렸고, 창밖에서는 어딘가 낯선 새 한 마리가 조용히 울고 있었다. 텅 빈 집은 차가웠고, 말 없는 공기는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그 적막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정들에 잠식당하기도 했지만 바깥공기는 평화롭고 상쾌했다.
나만의 세계에서 나와의 대화를 하며 나를 찾아가는 놀이를 시작해 본다. 곧 집안을 탈출하여 집에 경계가 되는 곳까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 본다
고요한곳, 깊숙한 곳, 어두운 곳을 찾다가 가장 화려한 곳, 가장 높은 곳, 가장 먼 곳을 찾아본다. 마지막에는 오늘의 비밀장소를 만들며 할머니가 찾게 만들 것이다.
지하실로 내려가 쿰쿰한 냄새를 맡으며 언니와 오빠의 오래된 책을 뒤적여 보기도 했다. 부엌에선 아궁이 뚜껑을 괜히 열어보며, 여름이라 불 없는 꺼진 연탄구멍을 가만히 보다 옆에 그냥 있는 집게를 데리고 이번 기회에 연탄 가는 놀이를 해본다. 마지막엔 옥상으로 올라가 숨바꼭질할 나만의 비밀 공간을 찾아 시범 삼아 몸을 숨겨보기도 했다.
그래도 약긴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 나는 옆집과 경계를 이루는 담벼락에 올라가 앉았다. 말괄량이 삐삐에 지지 않을 만큼 담을 오르며,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했다. 어쩔 때는 몸을 움직이고 주변을 바꾸어보아도, 마음 어딘가는 여전히 멈춰 있는 듯한 기억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할 수 없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나를 불러주는 소리, 나를 바라봐주는 눈빛이었다.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바라봐 주지 않던 그 순간, 나는 누군가 나를 찾아와 주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아무도 오지 않는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마음 같았다. 그 기다림이 바로 허전함이었다. 시간은 멈춘 듯 느리게 흘렀고, 내 몸만 고립된 것 같은 이질감 속에서, 이것이 삶인지, 멈춤인지, 아니면 죽음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었다.
아빠의 묘 앞에서 느끼는 평온함
이제 나는 아빠의 묘 앞에 서 있다. 그곳은 도시와는 다르게, 높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과, 그 아래로 잔잔히 고인 작은 못이 보인다. 바람은 조용히 산 능선을 타고 흐르고, 새소리와 벌레 울음이 귓가를 간질인다.
그곳에 서면, 내 안에 남아 있던 도시의 허전함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린다. 어린 시절 새벽을 가득 채우던 차가운 이슬과 안개, 시원하게 흐르던 도랑물, 작은 생명들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마음에 선명하다. 그 자연의 소리와 공기, 맑고 차가운 새벽의 감촉이 지금은 아빠를 감싸주고 있다고 믿는다.
아빠는 말이 적은 분이셨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엔 따스함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도, 그분은 내 마음을 조용히 채워주셨다. 지금도 그분은 이 자연 속에서 평온하게 미소 지으며 쉬고 계실 것이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모든 자연의 소리와 공기가 아빠를 감싸 안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곳에서는 외로움도, 허전함도 없다. 오직 조용히 머무는 평온만이 존재할 뿐이다.
허전함에서 평온함으로
어린 시절 도시의 정적 속에서 느꼈던 허전함과, 아빠의 묘 앞에서 마주한 자연의 평온함은 서로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다. 도시의 정적은 나를 멈춰 세웠지만, 자연의 고요함은 내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이제는 안다. 그 힘은 허전함마저도 아빠와 자연이 따스함으로 조용히 감싸 안았다는 것을... 멈춰 선 시간의 끝에서, 오래도록 기다려온 따뜻한 온기가 내 마음을 채워주고 있다. 그제야 나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 숨결은 나를 다시 걸어가게 한다.
별 헤는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씁니다.
나는 우주의 공식을 찾는 이들과 달리,
영원의 공식을 찾아 나아갑니다.
같은 시공간 속에 머물러도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만,
오래도록 붙잡고 싶은 누군가가 있기에,
이름 없는 별들처럼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는
감정과 경험을 소중히 꺼내어 기록합니다.
아픈 상처도, 행복한 기억도
고이 간직하며 글로 남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