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BJ Kwon

이제, 내 직접 경험 절반, 추측 절반으로 이야기를 해 보겠다.


ㅈ선생이나 ㅎ사장이 했던 말을 복기해 보면, 내 이전에도 꽤 많은 대리 시험 선수가 있어왔다. 그런데 대리시험을 통한 입시부정이 적발된 것은 89년 2월이 처음이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부정을 통해서 대학에 들어갔다는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대리시험 선수가 되어 부정에 가담하고, 몇 백에서 몇 천만 원을 챙기고 그 후 판검사나 고위 공무원 또는 잘 나가는 삼성맨이 되어서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었단 말일까? 아니면 그들도 나처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혹시 걸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조신하게 살고 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그동안 대학 입시 부정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몇몇 적발되어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사례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대학 입시 제도가 큰 줄기에서 몇 번 변화해 왔는데 (70년대 본고사, 80년대 초반 학력고사 선시험 후 지원, 88년 이후 학력고사 선지원 후시험, 93년부터는 수능), 제도가 어떻든 간에 "꾼"들은 창의적인 두뇌로 방법을 만들어내었다 (막말로,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머리가 좋은 직업군은 사기꾼이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대부분 대학 내부자와의 치밀한 공모가 있어야 가능하다.

점수 조작 (직접적으로 의뢰받은 학생의 점수를 슬그머니 올려서 합격시키기)

점수 바꿔 치기 (의뢰 학생과 합격자의 점수를 바꾸기.. 주로 꼴찌나 바로 그 앞의 라인에서 합격한 학생을 건드린다. 그렇게 하면 덜 억울하다나 뭐라나 하는 개소리를 한다)

대리 시험 (이 수기에서 밝혔던 것처럼, 응시원서, 수험표, 주민등록증 위조를 통해 의뢰 학생으로 가장해서 시험 보고 합격하는 경우)

결원 충원 시 집어넣기(합격자 미등록으로 결원이 생길 때 추가 모집할 때 슬그머니 조작해서 의뢰 학생을 합격시키기)

윗 방법들을 섞어서 응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브로커나 대학 내부자를 통하지 않고서 부정행위를 시도하는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험 선수와 의뢰 학생이 같이 들어가서 커닝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것. 이런 경우 브로커를 통하지 않아서 큰 금액이 오고 가는 것이 아니고 잘 아는 사이에 부탁을 하고 들어주는 형태이다. 하지만, 대학 입시의 경우 감독이 매우 삼엄해서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험 선수의 대부분은 커닝에 대한 경험이나 노하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걸려서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도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라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 편입학 시험에서의 부정은 훨씬 쉽고 만연되어 있다. 대학 입시처럼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는 것도 아니고, 편입학 과정에서는 대학 내에서 주무를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예체능 입시의 경우, 교수를 매수해 실기 시험에서 의뢰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주어 합격하게 하는 사례는 많이 있고 자주 적발되기도 했다. 사실 예술의 평가에서는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하기가 힘들다. 연주 스타일이나, 화풍 같은 것은 학생과 평가 교수가 사전에 어떤 식으로든 접촉했던 적이 있으면 (예를 들어 학생을 지도하지 않았어도 콩쿠르 심사위원을 하면서 그 학생의 연주를 보았다면), 얼굴과 이름을 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팔이 안쪽으로 굽는" 평가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예체능 입시 부정은 애교스럽다고 생각한다. 부모나 학생 본인의 허영심은 채워지겠지만, 어디 음대나 미대를 나왔다고 해서 갑작스레 기득권의 대열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학력, 아니 출신 학교로 일단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이 대학 서열은 매우 공고하다. 서울대와 연고대, 서성한, 중경외 등등.. 사실 서울공대 꼴찌로 들어간 사람과 연세대 같은 과 수석으로 들어간 사람, 당연히 후자가 입학 성적도 높고, 큰 이변이 없는 한 대학 이후의 공부에서도 학력 성취 면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사회에서 연세대 졸업생들은 서울대 출신들에 비해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한다. 아주 웃기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다들 기를 써서 서울대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연세대에 소신 진학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 마음으로 큰 대비를 하고 들어가는 것으로 오히려 더 성숙하다고 보인다. 이것은 서울대 연고대만의 차이가 아니고, 이 서열상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연고대 들어갈 수 있는데, 장학금 때문에 경희대, 한양대를 간다는 것, 서강대 갈 수 있는데 인하대를 가는 등, 다 비슷한 이야기다.


여기서 방향을 바꾸어 보면, 객관적인 학생의 실력은 광운공대를 갈 수준인데 브로커가 접근해서 경희대나 한양대를 합격시켜 주겠다고 꼬드기면, 그 당시 돈으로 돈 몇 천만 원(지금 수준으로 몇 억)이 아무것도 아닌 집안에서는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여기서 하나 눈여겨볼 것은, 이들은 택도 없는 시도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학생의 수준에 비해서 현저히 높은 학교에 부정 합격시켜 주는 것. 왜냐하면, 위험 부담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거나, 학생이 나중에 학교에 들어와서 다른 학생들과 차이가 너무 나면, 쉽게 들통 날 수 있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것을 본다. 어떻게 하면 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먹을 수 있을까, 이런 거다. 경희대 의대를 시도하는 경우, 그래도 본인이 서울시내의 하위랭킹의 대학은 갈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건 또 다르게 보면, 아무리 수준이 낮은 "듣보잡" 학교라 하더라도, 그런 곳에 브로커를 써서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들어가려고 하는 계층이 있다는 얘기다. 집에 돈은 많고, 사업체를 자식 한데 물려는 줘야겠는데, 전문대 나온 애를 대표이사 시키기엔 영 모양새가 안 나온다 이거다. 그럴 때, 어딘가 시골에 있는 학교에라도 꽂아 넣어서 졸업장을 손에 쥐여주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요(그런 돈 많은 학부모)가 있는 곳에 공급(브로커)은 오게 되어 있다. 증거는 없지만 심증으로 말할 수 있다. '에휴, 그런 학교 나와서 뭐 해' 소리 나오는 듣보잡 학교 중에서 입시 부정은 경희대 한양대 보다 훨씬 많이 있었다. 옛날에 시골에서, 누가 어디 대학 돈으로 갔다더라.라는 말, 심심치 않게 오고 갔는데, 그건 구라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93년 이후 수능으로 제도가 바뀌었는데, 그 이후로도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거의 매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 것이 한국의 대입 제도이다. 그 많은 변화에 적응을 하기 힘들었는지 (사기를 치거나 가담할 때 자기가 익숙하고 잘 알아야 할 수 있다. 계속 변화무쌍하는 환경에서는 치기 힘들다) 그 이후에는 입시 부정에 관한 뉴스가 적어졌다. 새로운 제도에서는 대학 교직원이 슬쩍 결과를 조작할 기회가 더 적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서는 안 된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93년에 대학 입시 부정에 관한 뉴스가 꽤 많았고 거의 정점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수능제도로의 전환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고도의 술책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아까도 말했듯, 나는 대학 입시 부정은 언제나 있어 왔고, 가담한 학부모 중에는 고위 공직자도 있었을 거라고 본다.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고위 공직자 중 입시 부정 조직과 커넥션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한 부정은 언제나 있어왔는데, 입시 부정을 수면 위로 올리고 뉴스에 터뜨리면서 공론화를 시키면서 누군가 이익을 얻었고 누군가는 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93년 이후로도 입시부정은 계속 있어왔으나, 더 이상 뉴스로 공론화될 건더기가 없어서, 수사망을 피해 가거나 아니면 적당히 수사망을 주물러 가면서, 제2, 3의 ㅎ사장은 브로커로서의 활동을 계속해왔다고 본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학벌에 미친 사회인데 이게 완전히 뿌리 뽑혔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ㅎ사장과 ㅈ선생, 이 둘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내 입장에서는 ㅈ선생이다. 그는 교육자라는 탈을 쓰고, 자기를 신뢰하는 학생들을 꾀내어 범죄의 길로 이끈 사람이다. 고등학생이 알아봤자 뭘 알 것이고, 경험해 봤자 뭘 경험했을까? 겉으론 똑똑한 척해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교육 현장에서 지근거리에서 관찰하다가, 얘가 타겟이다 싶으면 은근하고 집요하게 접근해서 범죄의 도구로 사용하는 인간. 그러고 나중에는 자기는 가난한 집 아이들 좀 도와준 것 밖에 없다는 개소리를 친다. 법의 심판을 여러 번이나 받은 ㅎ사장과는 달리, ㅈ선생은 멀쩡했다. 만약 그가 검거되었다 해도 어떤 처벌을 받았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법으로는 그렇게 엄하게 다스릴 만한 범죄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 맘속에서 그는 지독히 사악한 사람이다. 그가 제명에 죽지 못하고 벼락에 맞아 죽기를 바란다.


내 친구 유섭이,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는 앞으로 사기꾼이 되겠다고 공언했던 녀석. 내가 ㅈ선생이 놓은 덫에 걸려서 어쩔 줄 모를 때, 사기와 협박으로 나를 구해준 놈. 너무 고마운 놈. 그는 큰소리쳤었던 "좋은 사기"의 예를 몸소 보여주었다.


그 이후로도 유섭이와는 몇 년간 잘 어울려 지내긴 했으나, 대학 다니는 동안 그 녀석은 서서히 사기꾼으로서 자기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사업한다고 돌아다녔는데, 누구에게 돈을 받고서 계약을 이행 안 하면서 이런저런 구실로 빠져나가려고 했다는 말이 들렸다. 사기꾼이란 게 별게 아니고 그런 걸로 시작하는 거겠지.


대학 졸업 후에 만났을 때, 그는 사귀던 여자애를 임신시켰는데 목사인 아버지가 낙태를 시켜서 몹시 열받아 있었고, 그와 그 교회를 상대로 어떻게 사기를 칠지 작전을 짜고 있었다. 그때 그놈은 나에게 말했었다. 이제 더 이상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게 나을 거라고, 계속 어울리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도 어떤 사기를 칠 것 같다고, 그런데 친구에게 사기를 치는 것은 정말 괴로울 거라고. 그놈은, 너는 너의 길, 나는 나의 길을 가자고 했다. 그리고는 소식이 끊겼다. 다른 동창을 통해 그와 다시 연결될 수 있기는 했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좋은 인연은 서로 좋을 때 끝내야 한다.


나에게 "이젠 다시 연락하지 마라"라고 했던 두 사람. 내 인생에서 하나는 악마로, 또 하나는 은인으로 남아 있다.

이전 09화뒷이야기, 개인적 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