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이야기, 개인적 소회

by BJ Kwon

89년 2월 지명수배되었던 ㅎ사장은 결국 5월에 검거되었다. 첨부 이미지는 그날 MBC뉴스데스크 보도 화면을 캡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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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면은 그 당시 직접 보진 못했다. 나중에 검색으로 찾은 영상 자료이다.


뉴스 클립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뉴스 카메라를 들이댈 때 얼굴을 숙이고 손으로 옷으로 가리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주범 ㅎ사장은, 밤샘 조사 때문에 피곤했는지, 카메라가 오기 전까지 책상에 엎드려 있었지만, 카메라가 오니 오히려 자연스럽게 얼굴을 들고 기자의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 보인다. 확실히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기개(?)를 보인다. 전과 17범 정도 되면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그의 검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떨렸다. 혹시 여죄 추궁 과정에서 내 이름을 대는 것이 아닐까? 그럼 나도 잡혀갈 텐데. 그가 내 이름은 안 댄 것 같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범죄자들은, 더구나 이런 베테랑 사기꾼들은, 무슨 한 두건이 잘못되어서 잡혔을 때, 경찰,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모든 범죄 사실을 100% 다 밝히지 않는다. 다 말해봤자 형량만 늘어날 것이니 어떻게 해서라도 감추거나 숨길 것이다. 그리고 뉴스에 나온 것만 해도 열 건이 넘는데, 내 경우는 실패한 케이스니, 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 건은 한번 찔러봤는데 안된 케이스로, 거의 잊어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ㅈ선생 말마따나,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이 수기를 쓰면서 많이 갈등했다. 내가 저지른 행동은 엄연한 범죄 행위이다. 대리시험 치다가 적발되어 검거되고 뉴스에 나온 다른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으니, 나도 떳떳하지 않다. 뭘 잘했다고 내가 한 짓을 이렇게 글로 쓰고 까발리나, 많이 망설였다. 어쨌든 나도 범죄를 저질렀는데 하늘이 도운 덕에 성공하지 못했고, 처벌받지 않고 넘어갔다. 미수에 그쳤고 금전적인 이득을 크게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적발이 되었다 하더라도 큰 처벌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나의 이러한 떳떳하지 못한 과거에 대해서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은 없다.


내가 지금 속죄하겠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고,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런 범죄에 연루되게 되었는지, 그 현장의 한가운데에서 직접 보고 겪었던 것들을 밝히고 싶었다.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 동안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참고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 자기의 외모, 목소리, 키 등 타고난 신체조건 때문에 콤플렉스를 갖기도 하고,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콤플렉스도 있다. 부모로부터 받았던, 혹은 결손가정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콤플렉스도 있다. 살면서 우리는 여러 종류의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데, 예를 들어 학교에서 심한 왕따나 학폭을 지속적으로 당하면, 이후 대인관계에 콤플렉스를 갖게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경우 콤플렉스의 원인에 본인의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콤플렉스를 풀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심각해 보이지는 않아서 그냥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손상된 자존감을 제대로 회복시켜 주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고착되고 그 이후의 삶에 악영향이 있게 된다. 그러면서 개인의 잠재력은 알게 모르게 쪼그라들게 된다.


누가 어떤 콤플렉스를 가질 때 그것이 객관적으로 그럴만할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가 자기는 코가 너무 큰 것이 콤플렉스이어서 성형을 통해 교정하고 싶다고 할 때, 옆에서 볼 때는 글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객관적인 사실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 콤플렉스로 표출되고 우리의 인생을 직접적으로 좌지우지하게 된다.


내 경우는 가난, 궁핍이 콤플렉스였다. 따지고 보면 절대적 빈곤을 겪은 것도 아니지만, 그런 심리적인 콤플렉스로 스스로를 옭아매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 같고. 그것이 자아 성장과 자존감에 나쁜 영향을 준 것 같다. 좀 있어 보이는 애들 앞에서 괜히 주눅 들어 갖고는, 그들을 적대시하며 '난 너보다 더 똑똑하고 잘났어, 누가 더 잘 살게 될지 앞으로 두고 보자'는 삐뚤어진 감정을 갖고 있었다. 걔들이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고등학교에서 나의 이런 면들이 은연중에 겉으로 노출되었을 것이고, 이 와중에 특출한 재주를 보였기에 (공부해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하나의 재주이니), 검은 그림자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때가 되자, 유혹의 손길은 내게 다가왔고, 망설이는 나에게 온갖 감언이설과 가스라이팅으로 범죄에 동참하도록 이끌었다. 나는 그것이 마치 내가 기다리던 복수의 기회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교통사고가 나서 그 미션을 이루지 못한 것은 하늘이 주신 축복이다. 그리고, 입에는 달았지만 가시가 있어서 불안하게 느낀 돈 맛에 허우적거리던 나를 친구 유섭이가 구해준 것은 하늘이 주신 두 번째 선물이다. 이렇게 내적으로 안정이 되니, 몇 달 뒤 한번 더 다가온 유혹의 손길을 어렵지 않게 뿌리칠 수 있었다.


대리시험 선수로 뛰다가 적발되어 법의 심판을 받은 다른 대학생들도 나름 비슷한 사연을 갖고 그 일에 뛰어들었을 거라 짐작한다. 나는 그들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그들도 악마 같은 자기 학교 선생 놈들의 마수에 걸린 불쌍한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이런 경험을 겪었다는 사실이 몹시도 아쉽다. 알게 모르게 그것이 이후의 내 인생에서 마이너스 영향을 준 것 같다.


대학교 들어가서 내가 느꼈던 충격은 대단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사실 내 주변에서 '와 대단하다'라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을 별로 보질 못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한 줄 알았다. 근데 대학 가보니 그게 아니다. 다들 대단하다. 내가 제일 찌질한 것 같다. 이건 학력고사 성적이 뭐냐 등수가 뭐냐 차원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내가 공부만 하던 친구들을 향해 비아냥 거렸던 것들—그깟 시험공부 쫌 해서 성적 올린 것 갖고 뭐 그리 폼을 잡냐 했던 것, 대학에 가보니 그대로 나에게 되돌아옴을 느꼈다. 나도 그깟 학력고사 준비 쫌 해서 점수 잘 받아서 대학 들어온 것 갖고 전혀 폼을 잡을 수가 없는 거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이런 세상에! 탄탄한 논리, 넓은 식견, 번뜩이는 문제해결 아이디어, 대담한 실행력, 그리고 쿨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났다. 어이쿠, 난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난 뭐 한 가지 잘한다고 내세울 게 없다. 그러니 어째, 그냥 공부만 해야지. 공부는 여전히 재미있었고, 공부를 어느 정도 하면 학점을 잘 받는 것 정도는 계속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이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 정도는 해야 이 험한 세상에서 내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쥐 죽은 듯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내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무시하던 주변 친구들의 삶을 내가 살게 되다니, 그러니 남의 인생 함부로 평가하는 거 아니다.


사실 여기서 나는 1988년 1월의 일에 대한 죄의식 때문인지, 까불지 말고 조신하게 살자는 정신으로 스스로를 옭아맸다. 대학 가서 사람이 겸손해진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조용해졌다고나 할까.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면 내가 뭐 그들에 비해 부족해봤자 얼마나 부족할까, 사실 도토리 키재기 아니었을까?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위축이, 이후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여러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차버렸던 같기도 하다.


확실한 것은, 가난 콤플렉스가 그 이후로 해소가 아니고 더욱 고착화된 것 같다는 것이다. 그전에도 괜한 자격지심에 주눅이 든 채 지냈다고 했는데,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무리 삐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나만의 어떤 주체사상이 있었다. 대학 이후에는 그것을 잃어버렸다. 가난이란 현실이 달라진 것은 없는데, 주변에 다들 멋있는 사람들만 있어서 말이다. 위에서 말했듯 콤플렉스는 객관적 현실보다 내 심리에서 어떻게 소화해 내느냐에 달린 것인데, 나는 그에 관한 내적 갈등을 잘 소화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전 글 어딘가에서 "…(대학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라고 썼다. 우리 집이 내가 고3 때 특히 한번 더 가세가 기울게 되었고, 대학에 입학하던 88년, 그다음 해인 89년까지도 부모님의 재정 상태나 우리 주거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그걸 익히 보아왔던 나로서는 당연히 가졌던 생각이다. 사실 학부 4년, 석사 2년, 방위복무 1년 반, 그리고 1년간 유학준비, 총 8년 반동안 과외로 당시 돈으로 몇 천만 원에 달하는 꽤 많은 돈을 벌었고 그로 인해 우리 부모님의 빚은 다 청산될 수 있었다. 그 빚은 사실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들 키우시느라고 지게 된 것이고, 이자에서 이자가 붙어서 그렇게 된 건데, 내가 돈을 벌 수 있게 된 마당에 내가 벌어서 그걸 갚아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아들 구실을 하는구나,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그래야만 했을까? 그것이 진정 옳은 길이었을까? 지금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학생은 학생다와야 한다. 동아리 활동도 하고 농활도 다니고 야학교사도 해보고 책도 많이 읽어보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 보아야 한다. 사실 합창단 활동을 하기도 했었는데 1년만 했다. 다들 너무 잘 나서 그 옆에서 있으면 기가 죽어서 계속하기 힘들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데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것 말고는 대부분 도서관에서 공부하기와 과외 두 가지만 했는데, 이에 얼마나 많은 기회비용의 손실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안타깝다. 전공 지식 습득 및 경험에 대해서는 계속 발전이 있었지만, 인생을 보는 눈, 사람을 상대하고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면에 대해서 난 20대 초반에 거의 성장이 없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30대를 지나고 40대 정도 되니, 사회성 부족이라는 약점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매우 크게 느껴지게 되었다. 겉으로 볼 때 잘 나갔던 학계에서의 커리어를 50이 채 되기 전에 포기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만약 1988년 1월에 그 일이 없었다면 난 어땠을까? 고등학교 때까지 가졌던 가난 콤플렉스는 자연스레 해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한때 치렀던 성장통처럼 말이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고등학교 때 타도의 대상이었던, 있는 집 아이들의 과외 교사로서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같이 고민하면서, 그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각을 하면서 조금만 더 발전적으로 생각하면 가난 콤플렉스는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눅 들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내가 객관적으로 갖고 있던 실력을 바탕으로 옆의 친구들과 당당히 겨루고 선의의 경쟁 속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야 했다. 지금은 다 부질없는 평행 우주 속의 상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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