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유혹

by BJ Kwon

1988년 1학기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에 부딪혔다. 처음엔 걱정했지만, 몰래바이트(그때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자리를 별로 힘들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일단 한 군데를 구하고 입소문이 나니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와서 평균 두 팀을, 방학 때에는 세 팀까지 맡아서 했다. 곧이어 과외 금지 해제 발표가 났고, 그 뒤부터는 더 이상 몰래바이트라고 부르지 않고 당당히 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아니고 학부모말이다. 그전, 몰래바이트 시절에는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다녔던 부모가 자식에게 "불법" 과외를 시켜주다가 적발되어 파면된 사례도 있었던 터라 다들 몸을 사리면서 과외를 시켰는데, 그때 기점으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나는 1학기때, 주변 친구들이 아직은 많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던 시절부터 시작한 터라, 이미 나름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1학년때에는 그냥 놀거나 동아리 활동하기에 바빴는데, 나는 별로 놀았던 기억이 없다. 공부와 꽉 짜인 아르바이트 일정 때문에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살았을까 싶긴 하지만 그때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삶이 힘들다는 생각은 자주 했는데, 공부는 나에게 있어서 피난처였다. 공부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다른 잡념이 없어졌다. 그리고 공부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이 얼마나 바랬던 것인가, 공학도가 되어 대학 과정의 공부를 하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 로망이었다. 그렇게 바랬던 대로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데, 힘들어도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도 힘들긴 했지만, 이게 뭐 육체노동도 아니고, 이것 갖고 힘들다고 하면 안 된다고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때로 보람도 있었다. 가르치는 학생의 성적이 올랐다거나 나와 과외를 시작한 후 공부에 취미가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내 어깨도 으쓱해졌다. 남을 가르쳐주고 돈을 받는다는 것, 처음에는 어색했다. 더구나 시간당 급여를 따지면 대한민국 평균 노동자의 몇 배를 받았으니. 하지만, 익숙해지니 점점 더 프로페셔널 해졌다고 하나? 돈을 많이 받는 것에 어색해하는 대신 어떻게 해야 돈을 받는 대로 성과를 내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세상에 공짜 돈은 없는 법이다. 몇 개월 전에는 그게 있는 줄 알고 착각을 했지만.


그리고 불과 일이 년 전 고등학교 때에는 그렇게 혐오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공부만 하는 있는 집 애들, 지금은 내가 얘네들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었는데 별로 싫지는 않았다. 막상 이들을 상대해 보니 세부적인 것은 다르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가르치다가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있는 집 아이들을 혐오했던 것은 어린 시절 잠시 겪었던 성장통에 불과한 것이었다.


대학 1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시점. 겉으로 보면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나는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지난 몇 개월을 보냈다. 문득문득 만감이 교차해 왔다. 불안불안 하지만, 내 현재 상태가 크게 나쁜 것 같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이 진행되던 2 주남짓 하던 기간에는 학교가 휴교했기에, 난 여유 있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집에 와서 TV로 올림픽도 보거나, 비인기 종목 (사격이나 조정 같은 것)은 표 값이 아주 싸서 태능이나 미사리로 직접 가서 구경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아직도 온 나라 여기저기에 그 여운이 머물던 시기, ㅈ선생님이 갑자기 전화를 하셨다. 시간 되면 학교로 찾아오라고 했다. 자기가 이번 주 야자 담당 감독이니 늦게까지 학교에 있을 거라고.


웬일일까 짐작은 갔다. 별로 반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갔다. 난 아직 대학 1학년, 고등학생 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래도 선생님이 오래는데 가야지.


우리 고등학교는 교정이 참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교문에서부터 은행나무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데 형형색색의 가을 단풍은 장관이다. 그 길을 지나 교무실을 통과하고 (내 이름과 사진이 걸려있는 "서울대에 합격한 자랑스러운 선배" 코너를 지나서 말이다), 고3 야자실에 들어서자 복도에 팔자 좋게 앉아 있는 ㅈ선생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자, 갑자기 친한 척을 한다.


"어, 반가워, 그동안 잘 지냈지? 대학 생활 재미있어?"


건물 한 구석의 빈 교실로 들어가서는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이번에 한번 또 뛰어 볼래? 우가 선수를 찾고 있는데… 전기, 후기 스무스하게 통과하고 깔끔하게 한 장 어때? 미국 유학 가야 되지 않겠어?"

"한 장이라뇨?"

"천만 원"


천만 원이라, 흐음. 잠시 갈등하기는 했으나 곧이어 대답했다.


"저어, 생각해 주신 건 고마운데, 못 하겠어요."


아, 천만 원 날아가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쉽(?).


88년의 천만 원은 요즘 시세로 최소 1,2억이다. 만약, 오늘 누가 1억을 제시하면서, 약간의 불법을 저지르는 수고만 해주면, 그 돈을 준다고 하는데, 그냥 "저 안 해요"라는 쉽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누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는 그런 일을 실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다. 말은 쉽다. 착하게 살자, 죄짓고 살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하고 사는데, 유혹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다짐은 지키기 쉽다. 일단 그런 상황에 접하게 되면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이번 일에 또 끼어들 수 없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고 있었다.


또 현실적으로, 나는 현재 생활에 서서히 몸이 익숙해져 가고 있었고, 만족하고 있었다. 과외를 여러 팀 뛰는 게 결코 만만하거나 쉬운 건 아니지만, 사는 게 다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적은 노력으로 한탕을 노리는 삶, 그런 쪽은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난 돈의 달콤한 맛은 봤지만, 돈의 쓴 맛도 본 사람이다. 세상에 벌기 쉬운 돈은 없다는 것을 이미 겪었다. ㅈ선생님이 날 다시 돈으로 꾀려 하다니, 난 이미 과거의 내가 아닌데. 아직도 내가 그렇게 어수룩하게 보이나?


그날 밤, 낙엽을 사뿐히 밟아가며 모교의 교정을 나오면서, 한탕 크게 벌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게 이렇게 기분 좋다니,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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