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2월
1993년 2월 나는 방위병으로 군복무 중이었다. 저녁에 집에서 긴장을 풀고 쉬던 중 TV에서 9시 뉴스가 흘러나왔다. 귀에 번뜩 꽂히는 내용이 들렸다.
또 난리구만.
대학입시는 한국 사회에서 모든 이들의 관심사이다. 매년 1,2월이 되면 입시 결과가 나오면서 학력고사 수석이 누구인지, 대학별 커트라인이 어떻게 되는지 신문 방송을 장식한다. 이에 더해 특히 몇 년 전부터 입시 부정 사례가 적발되어 언론에서 벌집 쑤시듯이 파헤쳤다. 입시 부정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크게 끈다. '어떻게 감히'라는 대중의 정서가 입혀져서, 연예인 불륜 가십만큼이나 세상 사람들의 화두에 오르내린다.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마음이 들썩거렸다. 뭔가 할 얘기는 많은데 그런 대화에 낄 수 없었다 (요즘 말로 '할많하않'이라 하던가). 떳떳하지 못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뉴스에 점차 무덤덤해졌다. 그래도 남들 앞에서 아는 척은 안 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다. 벌써 5년이나 지난 일이다. 내 인생에 벌어졌었던 많은 일들 중 하나이고, 나에게 크고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잊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현재 2023년으로 돌려서 보자. 과연 그 일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겉으로 볼 때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 그때 그 경험은 무의식 속에서 이후 내 인생을 지배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어,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가랑비가 내린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고, 비 오는 데 왜 밖에 서 있었냐, 밖에 서 있으면 젖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몰랐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어차피 이런 것들이 모여 개인의 운명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어차피 비를 맞고 온몸이 젖을 운명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무덤에까지 갖고 갔을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여기서 해 보고자 한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도 결국에는 떳떳하지 못한 일에 가담한 적이 있었다는 경험담인데,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밝히나 많이 망설였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밝히는 것이 남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면, 이 이야기를 밝히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이 이야기로 인해 나에 대해 실망하거나 비난을 할 사람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비난이나 비판은 마지막 편이 나올 때까지 참아 주시기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