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 종주길, 짐 보따리 이야기 -
거창한 포부나 목적, 감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자전거 여행에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일반적이진 않을 수 있으니, 내게만 해당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자전거 여행을 나서기 전 날이면, 늘 짐 앞에서 망설인다.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남길 지에 대한 고민이나, 결과적으로는 매번 비슷한 것들이 선택된다. 다음에는 그런 고민이 없도록 어디에 적어두긴 했었는데, 그 어딘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찾으려 들면 찾을 수 있겠으나 확실하게 여기에 남기기로 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동해안으로의 2박 3일 자전거 종주길을 중심으로 적는다. 여름이고, 비 예보가 있었다. 여름이라 짐을 최소화할 수 있었긴 하지만, 다른 계절에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여행길에 많이 가져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항상 이런 것은 빼도 되지 않을까 하는데, 떠나고서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가져가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것들도 있으니 내 준비가 썩 체계적이라고까진 하지 못하겠다.
자전거.
trek 브랜드의 FX3 하이브리드 자전거는 포크를 제외하고 풀 알루미늄 재질이다. 구매 후 싯포스트, 핸들, 안장을 카본재질로 교체했고, 휠은 같은 알루미늄이지만 조금 더 가벼운 것으로 교체했다. 구동계는 시마노 데오레(10단)로 산악자전거스러운 세팅이다. 무게와 속도면에서는 로드자전거에 크게 미치지 못하나, 조작이 편하고, 험로 주행에 유리하다. 포지션도 적당히 편해서 척추질환에 시달리는 내게 적합하다. 특히 종주길은 자전거 도로가 아닌 곳을 달려야 하는 경우도 많아 이 자전거가 도움이 된다. 뛰어난 자전거는 아니나, 적당한 자전거라 생각한다.
의복.
자전거 주행용으로 머리 두건 1 장/스포츠용 마스크 1 장/바람막이 1 벌/속건성 반팔 상의 1 장/자전거용 패드 반바지 1 벌/ 양말 1 켤레/등산용 손수건 1장/자전거 장갑 1 짝을 착용한다. 주행이 끝나면 장갑과 바람막이를 제외하고 세탁해 다음 날 다시 착용한다. 모텔에 공용세탁기가 비치된 곳이 경험상 반반 정도인데, 세탁기가 없으면 욕실에서 물빨래를 하면 된다. 다음 날에 뽀송하진 않아도 착용할 정도는 된다. 지난 여행길, 속초에 묵을 때는 근처 코인세탁소를 이용했다.
두건은 헬멧 아래 쓴다. 달리고 있으면 머리에서도 땀이 많이 나는데, 두건이 없으면 헬맷이 오염되기 쉽고, 잠시 벗고 쓸 때 느껴지는 축축한 느낌이 너무 싫어서 꼭 사용한다. 마스크 역시 강렬한 햇빛을 막고, 벌레도 막아주기 때문에 꼭 쓰는 편이다. 특히 달릴 때 자연스레 벌어지는 입을 가려줘 흉측한 몰골이 노출되는 순간을 막아주니 고마운 물건이다.
일상용으로 모자 1 개/면티 1 장/하의 속옷 1 장/반바지 1 벌/양말 1 켤레를 휴대한다. 터미널로 이동할 때, 주행이 끝나고 숙소에서 착용한다. 봄과 가을에는 두꺼워지고 길어지지만 가급적 부피나 무게가 덜한 것으로 가져가고 추위는 바람막이 하나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솔직히 제일 고민이 많은 영역이다. 여벌로 한 벌씩 더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구한테 보여줄 일도 없고, 엄격하게 위생을 따질 필요까지 없는데도 그렇다. 평상시 하루에 한 번씩 속옷을 갈아입는데, 이틀, 삼일 연속으로 같은 옷을 입자니 뭔가 꺼림칙한 거다. 습관이란 것이 참 무겁다.
안전 및 비상용.
자전거용 헬멧 1개를 무조건 착용하고, 펑크 대비를 위한 예비 튜브 1 개/자전거 미니 펌프(수동식) 1 개/만능툴 1 개/타이어 주걱 1 쌍을 휴대한다. 2010년 속초 가는 길에 펑크로 인해 튜브를 교체해 보고 이후에 주행 중 펑크가 난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종주길에는 항상 가지고 다닌다. 혹 슬립 등 부상을 대비해 습식 반창고 넓은 것 1 장을 챙기며, 지병으로 인한 복용약을 일수에 따라 준비한다. 잠자리가 바뀌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체질 때문에 처방받은 수면유도제를 두 알 정도 가져간다. 정말 비상시를 대비해 신분증은 잊지 않는다. 우천에 대비해 판초 형태의 우비를 준비해 갔고, 첫날 오전 사용했다. 더운 여름에는 비를 맞으며 달릴 수도 있으나, 체온 저하에 대비해 가급적 착용하는 것이 좋다. 스포츠 고글은 선택사항일 수 있으나, 한 번 착용해 보면 다음부터는 필수품이 된다. 강렬한 빛과 벌레, 먼지로부터 눈을 보호해 준다.
기타.
신발은 평범한 운동화로, 근처 유적지 등을 방문하거나 숙소에 머물 때 전용신발보다 편하다. 싯포스트에 매달아 사용하는 안장가방(오르고타고 제품)을 사용하는데, 배낭을 지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효율적이다. 지갑과 휴대폰, 에너지바(1 개 정도, 먹고 나면 다음 편의점에서 다시 구매한다.)를 넣고 다니는 슬링백도 사용한다. 슬링백을 그대로 매면 주행 중에 자꾸 앞 쪽으로 쏠리게 되어 불편한데, 줄을 연결해 매고 있는 반대쪽으로 둘러놓으면 얌전히 등에 붙어 있는다.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현금은 10만 원 정도 준비해 가고, 주로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자전거용 네비게이션.
개인적으로 정말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trimm two라는 국산 네비게이션을 사용한다. '라이딩 가즈아'같은 사이트를 이용해 미리 경로를 구성해 간다. 주행하며 경로를 확인할 수 있고, 이탈할 경우 빨리 알아챌 수 있어 불필요한 체력 낭비를 줄여준다. 종주길이 표지판과 바닥의 파란색 선으로 대부분 잘 표시돼 있으나, 그렇지 못한 구간도 있어 충분한 효능감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이번 동해안 같은 경우 높은 고개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경사도나 남은 거리를 미리 확인할 수 있어 순간순간 체력 안배를 할 수 있어 매우 요긴했다.
가져갔으나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여벌로 가져간 상의 1 벌뿐이다. 빼도 될 것 같긴 하나, 무게나 부피를 크게 추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텔에서 이틀, 호텔에서 하루를 머물렀는데, 첫날 빼고는 어메너티를 제공하지 않거나 유료로 제공했다. 앞으로는 휴대용 치약과 칫솔 정도는 챙길 필요가 있겠다.
고민을 거듭해 준비해도, 늘 아쉬운 물건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행길이 집처럼 완벽할 순 없다.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 이제 준비는 미완으로 남겨두고, 챙기지 못한 것보다 잊지 못할 장면 하나 더 남기기로 한다. 여행이든 삶이든, 준비가 완벽할 수는 없고 설령 완벽한 준비가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완벽한 결말로 이어지리란 법은 없다. 그저, 작고 소중한 무언가 몇 개만 얻을 수 있었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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