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으로 여행] 무엇인가를 기른다는 것

- 우리 집 옥상 텃밭 이야기 -

by 도시백수

퇴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옷을 갈아입고 우리 집 옥상으로 올라가는 일이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 시달렸을 작물들에게 물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면 힘 없이 처진 이파리들이 눈에 아른거려 맘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10리터 조리에 물을 가득 담아 조금씩 넉넉하게 물을 주고 나서야 맘이 놓이고 주변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나면 나도 무언갈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텃밭이라고 해야 크고 작은 화분 10여 개 정도에 심어 놓은 것이 전부다. 원래 내 일도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타계하시기 전에는 오로지 아버지 일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작물들인데 정성도 참으로 많이 쏟으셨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그 작은 밭에서 오는 수확량이 제법 됐고, 그때마다 난 물리도록 그 결실들을 먹어야 했다. 질려버려서 이제 그만하셔라 한 적도 많았다. 가끔 하루를 넘겨 집을 비우실 때는 나는 때맞춰 물을 주느라 퇴근길을 서둘렀고, 아쉬운 아침잠을 못 자 짜증을 낸 적도 많았다. 그리 짜증 낼 일이 아니란 걸 그때도 알았지만, 평생을 못난 자식이었던 내가 그 때라고 다르지 않았겠지.


아버지께서 아주 멀리 가시고 나서 한 해는 묵혀 뒀었다. 다년생인 블루베리와 부추, 원추리에는 마지못해 물을 주긴 했지만, 가꾸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살아 있는 것을 말려 죽이진 못해 물만 줬었다. 그러다 지난해, 우연히 동네 세탁소에서 파는 상추니 도마토니 하는 모종을 보곤 충동적으로 사버렸다.(세탁소에서 모종을 왜 팔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올해는 팔지 않았다.) 베란다 텃밭 전용 플라스틱 틀까지 주문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새로 밭을 꾸몄다. 지난해 잡초로 무성했던 화분들의 흙을 고르고 거름흙을 보충해 줬다. 모종이 컸을 때를 상상하면서 적당히 나눠 심었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 어깨너머로 본 것밖에 없는 내가 가꾸는데도 상추니 깻잎이니 토마토는 쑥쑥 자라줬다. 매일 올라가 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물을 주고 주변 풀을 뽑아주고, 벌레라도 꼬이면 잡아줘야 했다. 토마토에는 지지대를 세워주고, 깻잎은 순지르기(?)인가를 해줘야 했다. 블루베리에는 벌레가 꼬여 나무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잡아줘야 했다.


실패도 있었다. 잘 자라던 토마토는 잦은 비에 녹아 버렸고, 깻잎은 무성하게 자라긴 했지만 향이 너무 진하고 식감이 질겨 먹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부추도 무슨 일인지 줄기에 힘이 없고 자꾸 말라갔다. 뭐 하나 잘 버리지 못하는데, 과감히 그것들을 뽑아버리고 잘라버렸다. 맘이 아팠지만, 모두 거름통에 따로 넣고 내년 농사지을 생각을 했다. 아. 내년 농사지을 생각을 하다니.


상추만은 배신하지 않았다. 채소의 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물만 줘도 잘 자라주었고, 병충해도 없었다. 심은 지 한 달 넘기고부터 수확량이 어마어마 해졌다. 몇 포기되지도 않는 상추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다. 이파리를 따고 돌아앉으면 다시 솟아나는 듯도 했다. 하지만 그 넉넉함과 배신하지 않는 의리가 너무 예뻤다. 열심히 쌈을 싸 먹고 삼겹살을 구웠다. 덕분에 몸무게가 늘었지만, 질려하지 않기 위해 나도 노력했다.


그렇게 상추와 씨름하고 있을 때 구석 거름통에 덩굴줄기가 자라더니 여름을 지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자세히 보니 참외덩굴이었다. 여기저기 노란 꽃도 피어있었다. 참외를 먹다가 뱉은 씨에서 발아한 모양이었다. 경험상 결실 없는 덩굴인 줄 알기에 뽑아버릴까 하다가 그 눈물겨운 생존본능이 갸륵해 그냥 두었다. 열매를 맺어도 대부분 낙과하거나 먹지 못할 정도로 작았던 것이 그간의 경험이다.


웬걸. 여름빛이 꺾여갈 무렵, 조금 성겨진 이파리들 사이로 뭔가가 보였다. 아직은 초록색 참외였다. 이미 초등생 주먹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처음엔 하나만 보였는데, 여기저기 여남은 개가 힘겹지만 튼실하게 줄기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갑자기 쓸모없게 여겨지던 성가신 덩굴이 귀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행여 낙과할 새라 열매 받침을 해 줬다. 날이 갈수록 크기가 커지고 색깔은 황금빛을 띠어갔다. 말라죽지만 않도록 가끔 주던 물도 하루 한 번씩 충분히 주었다. 거름통에서 자란 덕에 양분은 부족하진 않은 듯, 열매는 그렇게 잘 익어갔고, 그 열매는 집 식구들과 회사 사무실 사람들이 나눠먹었다. 물론 맛만 본 정도지만 말이다. 씨앗은 잊지 않고 받아 두었다.


그렇게 봄과 여름 두 철의 실패와 성공은 내 뇌리 속에 깊이 각인돼 버렸다. 지난겨울, 내년엔 뭘 어떻게 심을까 가끔 고민하면서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났다. 둘이 해야 할 거리도 아니었지만, 그냥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드릴걸, 귀찮아하지 말고 내 일인 양 할 수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블루베리 먹길 싫어했을까?, 상추든 블루베리든 내가 맛있게 먹었으면 속으로 좋아하셨겠다 하는 생각. 이 모든 상황을 그때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역사상 수많은 자식들이 했을 그 후회를 난 왜 반복해야만 할까?


지금 우리 집 옥상 텃밭엔 시계방향으로 해서 부추, 치커리, 참외, 블루베리, 대파, 공심채, 적근대, 상추, 깻잎, 원추리가 있다. 봄 농사로 부추와 치커리를 한 달 정도 수확했고, 상추는 두 달 넘게 수확하고 있다. 블루베리는 6월 한 달 매일 조금씩 따서 먹을 정도이고, 참외는 두 개 화분에서 사방으로 덩굴이 뻗고 있다. 작은 열매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여름작물로는 공심채와 적근대를 씨앗으로 파종했다. 공심채는 이제 곧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적근대는 너무 늦게 심었는지 성장이 더디다. 서른 살 넘은 원추리는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20250702_081024.jpg [상추 화분] 처음에는 6폭 였는데, 지난해 떨어진 씨앗이 같이 발아해 무성해졌다.

매일 물을 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1박 이상을 해야 하는 출장길과 여행길엔 목말라하는 상추잎이 눈에 아른거린다. 가끔은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신석기 혁명 이래 인간의 영원한 욕망이었을 수확의 기쁨이 너무 크다. 그리고 나누는 기쁨도 크다. 나눴을 때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나눴을 때 좋아할 사람에게만 나눈다. 그리고 텃밭 앞에 설 때마다 자동반사적으로 아버지가 생각난다. 세월이 가며 흐려져 갈 기억을 이렇게라도 붙잡을 수 있다. 죄스러움도 느끼지만, 그리운 마음이 더 크다. 그래도 딱 이 정도로만 유지할 것이다. 그런데, 참외가 이번에도 잘 자라면 내년에는 오이와 호박과 고추도 심어 보고 싶긴 하다. 그렇게 내 인생에 할 수 있는 일과 즐거움이 하나 더 늘어날 것 같다.

20250702_081031.jpg [공심채 화분] 생각보다 화분을 너무 작은 것으로 했다. 내년에는 많이 늘릴 생각이다.


#옥상텃밭 #텃밭농사 #상추농사 #블루베리 #치커리 #공심채 #아버지의기억 #후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