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골목을 걷다

29화

한여름, 여름성경학교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교회에 살다시피 했다.


친구들과 놀러 가는 대신

나는 여름성경학교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다.

부모님이 일손이 필요할 땐 가지 못했지만,

그 외의 시간엔 거의 교회에 있었다.


교회엔 나처럼 방학을 반납한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는 함께 성경 말씀을 외우고

율동을 배우고

공과공부를 하고

간식도 먹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그렇게 보내며

어느샌가 방학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름은

서울에서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우리 시골 마을까지 내려왔던 해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처음 보는 노래를 가르쳐주었고,

같이 땀 흘려 놀아주었다.

여름 바람 속, 언니 오빠들의 웃음소리는

교회 마당을 환하게 밝혔다.

그들은 단지 성경만 가르치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

더 넓은 세상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우리 안에 풀어주었다.


오빠들은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불렀고

언니들은 손수 만든 색종이 강아지를 선물로 주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분홍색 리본을 맨 개구리 종이접기,

수건에 손수 수놓은 내 이름.

그들의 따뜻한 정성이

나를 향한 선물이라는 게

너무도 벅차고 신기했다.


하루는

언니 오빠들이 아빠 논에 풀을 뽑으러 갔다.

아빠는 처음엔 무척 말리셨다.

“교회 선생님들한테 일 시키면 안 되지.”

하지만

언니 오빠들은 웃으며 말했다.

“봉사하러 왔어요, 아저씨. 저흰 괜찮아요!”


그날,

아빠의 논두렁엔 웃음소리가 퍼졌고,

땀에 젖은 손으로 뽑아낸 풀더미가

논 가장자리에 높이 쌓였다.


그 여름,

나는 따뜻한 마음이 뭔지를 알았다.

나보다 훨씬 어른 같던 그들의 모습에서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배웠다.


어느 날

언니 중 한 명이

작은 수첩에 내 이름을 적고

이야기했다.

“넌 말하는 게 참 따뜻하고 조심스러워.

나중에 글을 써도 참 잘할 것 같아.”


그 말 한마디가

한동안 내 마음속에 둥실 떠 있었다.

나를 나보다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의 말.

그게 어린 나에겐

세상에서 제일 커다란 칭찬이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서울에서 내려왔던 언니 오빠들은

하나둘 짐을 싸서 돌아갔다.

작별 인사를 하던 날

내 눈엔 눈물이 맺혔다.

짧았지만

진심으로 함께 했던 여름,

그들은 나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었고

희망이었다.


그 여름,

나는 자라났다.

조금 더 따뜻한 아이로.

조금 더 세상을 향해 열린 아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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