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38화 빗물받이. 속 개구리알

《오래된 천조각》

38화. 빗물받이 속 개구리알


억수같이 쏟아지던 이른 장마철.

나는 툇마루에 앉아

주르륵 흐르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빗방울이 기왓장 위를 내달리고

장독대 옆 고무대야 속 물이 넘치고

고요한 마당에 빗물이 모여

작은 못처럼 퍼졌다.


지루한 끝자락,

나는 마루에서 일어나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부엌 뒤편, 장작 쌓인 곳

그리고 평소엔 잘 가지 않던

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좁은 틈새.

그곳에서 나는

비에 젖은 개구리울음소리를 들었다.


‘개굴, 개굴.’


빗물이 고인 빗물받이.

그 속엔 투명한 젤리 같은 알갱이들이

잔뜩 뭉쳐 있었다.

처음엔 이상한 돌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개구리알이었다.


“엄마! 여기 뭐가 잔뜩 있어!”

엄마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비만 오면 거기다 알 낳더라. 건들지 마라.”


하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젓가락 하나 들고

조심조심 그 알들을 들여다봤다.

톡 건드리면 흔들리는 물방울 속 생명들.

신기하고, 또 신비로웠다.


며칠 뒤,

그 젤리 안에 까만 점이 생겼고

그 점은 작고 긴 꼬리를 달고

개구리의 첫 모습이 되어갔다.


나는 매일같이 빗물받이를 들여다봤다.

나만 아는 비밀 같았다.

누구보다 먼저 생명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어느 날,

작은 올챙이 하나가 물 밖으로 나왔다.

나는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그 작은 몸짓이

가슴속에서 커다란 파문처럼 번져갔다.


**


지금도 장마가 시작되면

나는 툇마루 끝에 앉는다.

그리고 그 시절,

물웅덩이 속 생명을 들여다보던

어린 미숙이의 눈빛이

내 마음 한편에서 또렷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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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속 생명처럼,

기억의 조각들이 반짝이며 살아납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39화 – 개구리 잡으러 간 날

동네 오빠들을 따라 논둑을 달리며

개구리를 잡던 여름날의 모험!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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