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36화. 엄마의 고무신 아빠의 짚신

《오래된 천조각》

36화. 엄마의 고무신, 아빠의 짚신


시골의 밤은 참 길었다.

전깃불이 희미한 마루 끝,

아빠는 사랑방에 앉아 짚을 손질하고 있었다.


짚을 가늘게 찢고 꼬아 만든 새끼줄은

하나둘 동그랗게 말려 쌓였고,

그것들은 며칠 뒤

볍씨 담는 가마니가 되거나

타작마당에 펼치는 멍석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인 나에게 가장 신기했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짚신.


아빠는 놀랍도록 손재주가 좋았다.

짚으로 키를 만들고

지게에 걸치는 받침도 만들고

때로는 바구니, 때로는 짚신.

그 밤의 정적 속에서

짚이 아빠의 손을 타며 생명을 얻어갔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아빠는 짚으로 작은 짚신 한 켤레를 만들어 주셨다.

고무신은 아껴 신으라 하셨고

그 짚신을 신은 나는

마을 골목을 몇 바퀴나 돌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신을 신고 있다는 듯 자랑했었다.


짚신은 금세 닳았다.

하지만 그 촉감이 어찌나 좋던지—

부드럽고, 따뜻하고, 짚냄새가 났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고무신도 있는데 왜 지저분하게 짚신을 끌고 다녀!” 하시며

혼을 내셨지만,

아빠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도 어릴 땐 밤마다 짚신을 엮었단다.”


아빠의 짚신에는

겨울밤의 정성이 있고,

내 작은 발에는

그 따스한 손끝이 늘 닿아 있었다.


지금도 문득,

짚냄새나는 밤이면

그 짚신 한 켤레가

마음속을 걸어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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