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어린 시절의 그림자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1회
어린 시절의 그림자
성진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궁정중학교를 다니며, 그는 누구보다도 서울 사람다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의 일상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성진에게 어린 시절은 배고픔과 피로, 그리고 끊임없는 긴장으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성진의 어머니는 1948년생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배우지도 않았고, 한글을 공부하는 것조차 귀찮아했고,
자식들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요구와 분노를 쏟아냈다.
두 오누이는 논현동에 살던 외할머니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사대문 안에서 꽤 잘 살았던 집안의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나
하고 싶은 것은 다 저지르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결혼해 낳은 자식들에게까지 그 자유분방함이 이어진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성진은 하숙집 생활을 시작했다.
하숙비와 한 달 용돈 20만 원은 아버지가 보내주셨지만
그 돈으로 한 달을 견디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배가 고팠지만,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렇기에 그는 종종 아침밥과 저녁밥을 제시간에 먹지 못했다.
하숙집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밥을 줬지만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놀거나, 늦잠을 자면 밥 먹는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어린 성진은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나는 엄마 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니까, 그런 건가 보다.”
성진의 누나는 두 살 위였고, 성진에게 의지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누나는 친척 중 한 명에게 학대를 당했고,
그 사실이 드러나자 성진과 누나 모두 친척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어린 성진은 누나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누나에게 거칠게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 기억은 성진에게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았다.
누나가 22살이 되던 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을 때
성진은 마음속 깊이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 모든 상처 속에서도 성진은 강해져야 했다.
어린 나이부터 그는 세상을 배우고,
약한 자를 지키는 법을 익히며 살아야 했다.
어머니에게 받은 학대와 욕설,
그리고 누나의 죽음과 그로 인한 죄책감은
그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성진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재혼했고,
새어머니와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성진과 누나에게는 최소한의 하숙비와 용돈만 보내주셨다.
아버지의 마음은 착했지만,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갈등 속에서
성진은 늘 혼자 힘으로 버티어야 했다.
그럼에도 성진은 마음속 한구석에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누나는 내 곁에서 나를 지켜줄 거야.”
그 믿음 하나로 그는 매일을 견디었다.
두 오누이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작은 위로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성진은 어린 나이에도
자신만의 정의와 강함을 배워갔다.
성진의 어린 시절은 그가 지금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그를 거칠게 만들었고, 동시에 따뜻하게 만들었다.
약한 자를 향한 연민과, 자신을 지키기 위한 단단함.
그 두 가지는 이후 성진이 부인을 만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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