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 '사랑해'라고 말해보기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가면서 가장 큰 문화차이를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사랑하다"라는 동사를 남발하는 것이었다. "나는 운동하는 것을 사랑해, 나는 요리하는 것을 사랑해", 헤어질 때 "사랑해". 물론, 영어로는"love"라는 동사였지만, 내 입에서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었다.
한국에서 썼던 어떤 것을 향한 가장 격한 표현은, 아마 "~하는 것을 좋아한다"정도였다. 그런데,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이들과 생활하며 너무 큰 괴리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모든 것을 사랑하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흔히, 동양권 사람들은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사랑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게, 성인이 되었을 때는 큰 트라우마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이민자집단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문화차이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물론,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엄마, 아빠입에서 그 말이 나온 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일어나서 잠잘 때까지 모든 걸 사랑하는 서양권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듣지 못했던 걸까?" "나도 이렇게 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떤 것을 부러워하는지 몰랐지만 막연하게 부러워했다. 이제는, 그게 동양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한 사대주의의 프레임 안에서 '사랑'을 이해하려고 했었던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실제로, 20대 때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무언가를 책에서 배워야 한다, 정의(definition)를 찾아야 한다라는 것에 강박적인 집착을 했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의 정의를 알려주고, 그걸 그냥 따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게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이상하지는 않은 정도의 사람이 되었다. 아직도 모국어인 한국어로는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괜찮아졌다. 아직도, 빈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므로 정말 좋아하는 것, 사람이 아니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어렵다.
3년 전인 것 같다. 어느 날, 엄마가 전화로 나에게 '사랑해'라고 이야기해 줬다. 평생을 기다려왔던 말이지만 나는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없어서 너무 미안했다. 이제 60대 중반인 엄마가 '사랑해'라고 이야기하는 건 이제 어떤 의미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사랑'을 알아가고 있는 단계라 말할 수가 없었다. 내 프라이드를 내려놓고 그냥 립서비스로 말할걸... 이런 생각도 했지만, 한 달에 한 번 들을까 말까 한 이 말에 나는 "응"이라고 대답을 하고 만다.
아직까지, 가족은 물론,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해'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사랑을 하게 되는 날이 오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 버킷리스트의 하나는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