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복이 와요"를 기억하시나요?

저 기억 못 하거든요, 근데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by 하늘보리



사실 아직 이 브런치의 방향성을 잡고 있는 단계라, 제가 현재 겪고 있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직 윤곽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피드백을 듣고 있는 단계라, 저만의 유니크함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위 사진은 1979년 방영된 523회 MBC 특집 '웃으면 복이 와요'의 사진이나, 저작권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미소”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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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자면, 미소는 微笑로 “작은 웃음”이라는 뚯이다. 이 단어의 본래의 뜻을 알게 된 건 사실 일주일 전이다. 항상 이제까지 “아름다운 웃음“의 美笑의 미소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 미소를 지운다고 했을 때는 항상 활짝, 아름답게 지우려고 노력했다.


요즘 들어 갑자기 ‘미소‘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 건 두 가지 계기가 있다. 한 가지는 한국어의 한자어를 바로 들었을 땐 문맥상 조금 어려워 한자를 조금 봐야 이해하게 되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굉장히 소중한 배움을 주었던 학생과의 인연이다.


해외로 이주하게 된 학생을 잠시 도와주게 되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에게 smile을 지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어렸을 때의 나를 생각하며 웃는 법을 알려주었다.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도 활짝 웃는 법을 배우게 된 건 약 15년 전이다. 그 학생을 보며 어렸을 적 나를 보는 것 같았고, 학생에게 잘 어울리는 웃는 법을 알려줬을 때 굉장히 뿌듯했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웃는 법을 몰라서 가르침을 받았었다. 사실 아직도 이가 보이도록 웃는 건 어색하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는 아름다운 이를 보이며 활짝 웃는 것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어떤 시대 · 역사적인 배경에서 유래한 기준인지는 아마 학술적인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언제 가는 다뤄보고 싶은 내용이다.


마음에서의 여유였던 것일까? 가끔씩, 과할 정도로 웃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도 그만큼 여유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결코 한국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외국인의 '여유'와는 다른 이유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 영어단어 'smile'을 한국어의 '미소'라고 해석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딱히 한 가지 단어로의 번역은 되지는 않는다. 단어가 없어서, 사람들이 서툰 것일까?


지금은, 한국에서의 무표정의 삶이 익숙해졌지만 가끔씩 나는 웃고는 한다. 무표정으로 있으면 에너지 소비가 없어서 편하긴 하다. 웃으면 주름도 안 생긴다. 하지만, 웃음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상대방의 태도도 달라지고, 나도 덩달이 기분이 좋다.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잠시 봤었던 촌스러운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기억나곤 한다. 아마, 내 동년배라면 어렴풋이 생각은 잘 안 나지만 모두들 기억하는 문구일 것이다.


이런 말이 해야 했을 정도로 그 당시에도 삶이 팍팍했을까? 가끔, 70-80년대의 삶을 동경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 문제들 모두 그 시대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은 지었다. 단지, 도구들과 주변이 바뀐 것뿐만이 아닌 것 아닐까? 그렇다면, 2025년도의 우리는 '웃으면 복이 와요'를 어떻게 기억해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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