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하늘 아래 도수체조를 하는 줄 알았으나, 앞 조가 기초사격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생활관에 남아 또다시 사격 바둑돌 평가를 보았다. 이어 총기 수입도 진행되었다.
점심을 마친 뒤 총기 손질 랜덤 검사에서 우리 생활관 세 명이 미흡하여, 전원이 벌점 1점을 받았다. 그 말인즉, 나 또한 벌점을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이어 전투 부상자 처치 평가에서는 무난히 합격하였다.
오늘 조교들이 보이지 않는 모의를 한 듯, 하루 종일 긴장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사소한 트집을 잡았다. 처음으로 간이 샤워장을 사용했는데, 기대와 달리 불편하여 세수와 머리만 감았다.
저녁 전 책을 읽고, 식사를 마친 뒤 동기들과 신나게 잡담을 나누었다. 다시 책을 펼친 뒤, 저녁 일곱 시에는 생활관 전원이 참여하는 ‘마음의 편지’를 작성했다. 나는 분대장을 칭찬하고 식사 시설이 괜찮다고만 적었다. 불평을 쓰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익명이라 해도 글씨체는 곧 들키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녁 여덟 시, 개인 약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소대장을 만났다. 우연히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나는 뜻밖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나에게 ‘공(空)’, 곧 비움을 이야기했다. 비움은 단순한 버림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한 조건이라는 말이었다. 종교적 가르침 같기도 했으나, 그의 목소리와 눈빛에 담긴 진중함이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그의 말은 따뜻한 음악처럼 내 안에서 곡조가 되어 흔들렸고, 감동은 식은땀으로 번졌다. 생활관에 돌아와 한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목을 매듯 공부에 매달려, 잠을 줄이며 강박적으로 살아왔다. 소대장도 비슷했다 했다. 그러나 그는 군대에 와서 곧장 마음을 비우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날 비우라 전한 것이다.
그의 주파수는 내 마음에 닿았고, 나의 파장은 서서히 그의 파장과 합일되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비움이란 공허가 아니라, 채움의 다른 이름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