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식사 습관, 특히 밥 먹는 순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혈당 관리, 포만감 조절, 장 건강 증진 등을 위해 채소류 먼저 충분히 먹고 난 뒤에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이 많은 음식을 먹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이왕이면 몸에 좋은 방식으로, 골고루 먹는 것이 몸에 좋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은 늘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아내의 반복되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정작 식탁에 앉으면 입맛 당기는 고기반찬에 먼저 젓가락이 가는 걸 어쩌랴. 전문가의 말도, 건강 상식도, 심지어 반복 학습조차 무용지물인, 밥상머리의 인지부조화는 끼니때마다 반복되는 일상이다.
독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무런 조건 없이 책장에 꽂힌 책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자기가 선호하는 유형의 책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직업군에 따라 자신이 익숙하게 여기는 책을 꺼내어 드는 게 보통일 것이다. IT 개발자라면 기술 서적을, 마케팅 담당자라면 비즈니스 서적을, 문학도라면 소설이나 시집을 선호하는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혹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역사와 관련된 인문서나 음악, 미술 같은 예술 관련 서적, 아니면 여행 에세이만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독서 편향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나 통찰력을 키우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고의 틀이 굳어지고 창의성이 저하되는 등, ‘독서 영양학’적으로는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기 쉬운 구조이기도 하다. 읽는 책의 편식이 심해질수록 독서가 주는 자극은 점점 좁아지고, 결국 ‘자기 확증’만 반복하는 독서 루틴에 갇히게 된다.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광고나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하는 카피라이터들의 잡식성 독서 습관은 그 분야 특유의 창의성과 발상력의 원천으로 자주 언급된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문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과학 에세이까지 탐독하는 그들의 왕성한 ‘독서 식욕’은 어쩌면 편식을 피하고 지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직업적 생존 전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은 도끼다>, <다시, 책은 도끼다>와 같은 책을 통해 드러나는 ‘광고쟁이’ 박웅현의 인문학적 감수성과 더불어 시, 소설, 에세이를 비롯해 과학서, 미술사책, 경전 해설서에 이르는 독서 스펙트럼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폭을 넓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다양한 정보와 관점에 노출되는 것이 두뇌의 연결망을 확장시키고, 서로 다른 개념들 사이의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은 혁신적인 문제 해결의 핵심 요소로, 서로 다른 분야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원리를 새롭게 조합하는 과정에서 발전할 수 있다. 한 IT 전문가는 건축 디자인 서적을 즐겨 읽으면서, 소프트웨어 설계에 ‘공간 구성’과 ‘미적 직관’의 개념을 적용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혁신적으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철학과 심리학 관련 도서를 즐겨 읽던 마케팅 기획자는 인간 욕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감정 기반의 설득 전략을 성공적으로 캠페인에 접목시킨다. 어떤 디자이너는 생물학 교양서를 통해 자연의 구조와 기능에서 영감을 얻어, 제품 디자인에 ‘생태모방(Biomimicry)’ 개념을 도입해 기능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구현하기도 한다.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건축가나 과학자가 쓴 인문학 서적이나 반대로 시인이 쓴 건축이나 역사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독특한 인사이트를 주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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