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가가 된다는 것은

행위로서의 분석가

by Hyun Lee

라캉은 늘 제도화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늘 분석가를 만드는 것은 어떤 자격증이나 학회가 아니라 분석-주체가 분석가를 만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어렵고, 때로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제도화는 최소한의 안전망이기도 하다. 아무런 교육 없나 검증 없이 “나 분석가요!”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라캉은 왜 그런 태도를 견지했을까?


라캉은 세미나 11에서 나의 가르침의 목적은 분석가들을 ‘양성(former)’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세미나 15에서는 분석 경험의 끝에서 분석수행자(psychanalysant)가 분석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라캉은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언사를 한다.


« Pas tous ne sont psychanalystes (non licet omnibus « psychanalystas » esse) ou bien, il n’en est aucun qui soit psychanalyste. »

“모든 이가 정신분석가는 아니다(모든 이에게 ‘정신분석가가 되는 것’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혹은 오히려, 그 누구도 정신분석가인 자는 없다.”


라캉은 『Séminaire XV – L’Acte psychanalytique』에서 분석가의 문제를 존재론적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적 위치의 문제로 전환한다. 그는 여기서 “보편명제(proposition universelle)”를 직접 호출하면서, 분석가라는 범주를 전통적인 논리학의 전칭 판단 형식 — 예컨대 “모든 S는 P이다” — 로 처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만일 우리가 “모든 분석수행자는 분석가가 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격증 제도나 제도적 인증의 논리로 미끄러지게 된다. 반대로 “일부만이 분석가가 된다”라고 말하면, 이는 선택과 선발의 논리로 환원된다. 라캉에게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두 문제적이다. 왜냐하면 분석가는 어떤 집합의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 모두가 분석가는 아니다.

• 그러나 동시에, 분석가인 자는 아무도 없다.


이 이중 명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석가를 존재자(étant)가 아니라 담론 안에서의 기능(fonction dans un discours)으로 사유하기 위한 장치이다.


분석가란 어떤 개인의 실체적 동일성이 아니라, 특정한 구조 속에서 점유되는 자리(place)이다. 분석가 담론에서 분석가는 대상 a의 자리에 놓인다. 즉, 그는 주체를 향해 지식을 제공하는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결여와 욕망의 원인을 현전 시키는 자리를 점유한다.


이때 “보편명제”의 문제는 더욱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며, 분석가라는 범주는 다음과 같은 두 극단 사이에서 흔들린다. 누구나 분석가가 될 수 있다는 민주적인 보편화의 유혹과 분석가라는 어떤 존재론적 본질이 있다는 본질화의 유혹이다.


라캉은 이 둘을 동시에 거부한다.


분석가란 있다/없다의 범주로 파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분석가란 행위(acte) 속에서만 성립한다. 다시 말해, 분석가는 분석 행위가 발생하는 그 순간에만, 그 기능으로서 존재한다. 행위가 사라지면, 분석가라는 존재도 사라진다.


따라서 세미나 11에서 “나의 가르침의 목적은 분석가를 양성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의 ‘양성(former)’ 역시 단순한 교육적 훈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개인을 어떤 정체성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자신의 분석의 종결에서 특정한 위치를 인수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상과 동일시를 통과한 이후, 결여를 감당하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 역설 속에서만, “분석가를 양성한다”는 말은 의미를 가진다. 분석가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본질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체가 자신의 무지와 결여를 떠받치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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