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애도의 의미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애도는 무엇인가?
애도는 상실을 극복하는 문제가 아니라, 주체가 상실을 어떻게 상징화하고, 그 상실을 계기로 욕망의 자리를 어떻게 다시 배치하는가의 문제이다.
프로이트는 애도를 일종의 리비도 철회, 정상화의 과정으로 봤다면, 데리다와 라캉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프로이트의 애도 개념을 비판한다.

데리다는 애도가 본질적으로 실패해야 함을, 다시 말해 ‘성공한 애도’란 타자를 내면화함으로써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반면 라캉은 완전한 애도 자체가 애초에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보통 우리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라고 말하지만, 라캉은 애초에 우리는 사실 ‘그 사람’을 가졌던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나에게 의미가 되어주던 사람이 떠나서 힘들다고 할때, 라캉은 그 사람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채워주던 ‘자리’가 사라져서 흔들리는 것라고 말한다. 즉 문제는 주체의 욕망을 지탱하던 구조가 붕괴되었다는 데 있다.
라캉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욕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을 통해 욕망의 원인, 즉 대상 a의 자리에 무언가를 배치해 왔다. 애도는 바로 이 배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을 때 발생한다. 다시 말해, 애도란 “누군가를 잃었다”는 사실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그 누군가에게 맡겨두고 살았던 욕망의 기능이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상태를 마주하는 경험이다.
이 점에서 라캉은 애도를 어떤 심리적 단계나 치유의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애도는 시간이 지나면 끝나는 작업도 아니고, 정상 상태로의 복귀를 목표로 하는 과정도 아니다. 애도는 오히려 주체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이 무엇에 의해 지탱되어 왔는지를 드러내는 구조적 통과이다. 그 통과에서 주체는, 상실된 대상이 실제로는 결코 완전히 소유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과, 욕망의 결여가 본질적으로 메워질 수 없다는 점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라캉에게서 애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불가능성은 병리의 징후가 아니라, 주체 구조의 필연적 조건이다. 애도는 상실을 제거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이 욕망의 구조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재배치하는 데서 성립한다. 주체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욕망할 수 없게 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욕망은 다른 방식으로 재조직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라캉의 애도 개념은 데리다의 말처럼 실패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애초에 완결될 수 없도록 구성된 경험이며, 주체는 이 불가능성을 통과함으로써만 자신의 욕망과 다시 관계 맺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