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가의 욕망 = 윤리
지도교수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순간들 가운데 분석 경험이 아닌 순간은 없다.”
모든 순간이 분석 경험이라면, 그 순간을 움직이게 하는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그때 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나의 욕망이다.
정확히 말하면, 분석가의 욕망(le désir de l’analyste)이다.
여기서 말하는 분석가의 욕망은 개인적 욕구나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교정하거나 지도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타자의 말이 스스로 전개될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비워 두는 욕망이다. 분석가는 어떤 의미를 채워 넣기 위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 열릴 수 있는 공간을 지키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분석가의 욕망은 특정한 대상이나 결과를 향한 욕망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욕망이 나타날 수 있도록 그 조건을 유지하려는 욕망, 다시 말해 주체가 자신의 말속에서 스스로의 욕망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욕망이다.
따라서 “모든 순간이 분석 경험”이라는 말은 단순히 삶의 모든 사건을 분석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가 언제나 말과 욕망의 구조 속에 놓여 있으며, 분석가의 위치란 바로 그 구조를 듣고 유지하는 윤리적 자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러한 분석가의 욕망, 다시 말해 분석가의 윤리가 단지 분석실 내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윤리로까지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흔히 타인을 조직하고 설득하며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기술로 이해된다. 그러나 만약 정치가 오직 타인을 어떤 목적이나 이념 속으로 동원하는 장치로만 작동한다면, 그것은 타자의 욕망을 말하게 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오히려 타자의 말을 미리 결정된 의미 속에 가두는 장치가 되고 말 것이다.
이 점에서 분석가의 욕망이 보여주는 윤리는 정치에 하나의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분석가의 욕망은 타자를 대신하여 말하지 않고, 타자의 욕망을 대신 결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타자가 자신의 말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 공간을 유지하는 윤리이다.
만약 정치가 이러한 윤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치의 목적은 단순히 사회를 하나의 동일한 의미나 동일한 목표 아래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욕망들이 말해지고 드러날 수 있는 장을 유지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석가의 윤리는 단지 치료의 윤리가 아니라,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윤리로도 사유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