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카페 안 가세요?

응, 안 가.

by 권정희


작업실을 뺐다.

몇 번째 작업실이었던가?

이래 저래 네다섯 번째 됐던 것 같다.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전전 작업실은

럭셔리한 가구며 고가의 장비까지 구비했었지만,

대출 이자가 급상승한 어느 해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빼야 했다.

그리고, 상황이 좀 나아질 무렵

야심 차게 다시 오픈한 지금의 작업실은

작업실보다 카페로 가는 일이 더 많아

작업실을 빼기로 결정했다.


사실, 그 이유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대박이 나면 큰 집으로 이사를 가리라 다짐했지만,

그 대박은 한해 한해 미뤄졌고,

여전히 내 드라마는 표류 중이고, 내 웹툰은, 웹소설은 더디 진행 중이고.

소설도 이제야 겨우 두 번째 출간을 눈에 앞뒀을 뿐이었다.

집이든 출간이든 연재든 글 쓰는 속도는 맘처럼 따라와 주지 않았고,

그러니, 대박도 이사도 그냥 남의 큰 떡 일뿐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집을 정리해야 하는 한계치에 이르고 말았다


골 때리는 라이프에 연재했듯 -

낭만적인 책 육아를 꿈꾸던 작가 엄마는

책을 무지막지하게 사 들였고,

핸드폰 탭, 컴퓨터보다는 레고가 더 좋겠다 싶어

레고도 무지막지하게 사 들였었다.

그 결과

집안은 책과 레고로 가득 차게 되었고,

책과 레고들이

발에 차이고, 밟히고의 지금이 되고 만 것이다.


- 컴퓨터 사줄게. 장난감 치우자.


아이들에게 마법의 딜을 걸었다.

- 언니 잘 생각해 봐. 지금 언니는 지옥의 문을 여는 거야.

옆집 누군가가 극구 만류해 왔다.

하지만 정리가 우선인 내 귀에는 걱정은 나중일이었다.

- 나는 듀얼 모니터로 부탁해

맥가이버 남편이 한술 더 뜬다.

그렇게 나는

고사양의 게임용 컴퓨터 3대에 모니터 4대를 집에 들이는 대참사를 벌이고 말았다.


일을 벌이고 나니

사뭇 걱정이 됐다.

휴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삼부자를 보는 일이 일상이 될 것 같은

불길함.... 물론 그런 불길함은 상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없는 집안의 휴일 풍경은 참담했다.


결국 나는 작업실을 처분하고,

집안으로 들어앉았고,

내 은색의 아이맥은

삼부자의 게임용 컴퓨터 옆에 당당히 자리했다.


"엄마 커피숍 안 가세요?"

"어 안 가."

"와이프, 일하러 안 가?"

"어, 안 갈 거야. 아니, 못 가."


지금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원격근무지

방안 2평짜리 오피스에 출근하는 신세다.

삼부자의 기계음이 울려 퍼지는 전장 속에서

헤드셋 낀 첫째는 "적 spotted!"를 외치고,

둘째는 유튜브를 보면서

세상 떠나갈 듯 웃어대고,

남편은 한쪽에는 주식 강의, 다른 한쪽에는 게임화면을 틀어놓고

눈동자가 바쁘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커피를 내려놓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작업실은 잃었지만, 대신 얻은 게 있다.

바로…

집에 가장 오래 붙어있는 사람 1위.
프리미엄 가족 워킹공간 이용권.
그리고 말 안 듣는 직원(셋).

- 이제 컴퓨터 그만 하고, 할 일 하세요.

주구창장 외쳐대지만, 목소리가 커질때 쯤에서야

느릿느릿 움직이는 종족이 다른 남자 사람 (셋).


"엄마, 지금 뭐 하세요?"
"안 보이니? 일하는 중이야."

"근데 왜 카페 안 가세요?"
"어, 이제… 작업실이 여기거든."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되뇌어본다.

그래도 뭐,

언젠간 이 소음 속에서도 명작이 태어나겠지.

아마도…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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