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본은 썼고요. 방송은...글쎄요?

때때로 이야기는 오래 살아남는다. 1

by 권정희

- 공경비 긴 여정 스토리 첫 번째


“장미 아파트 공경비” <콩트, 2006년쯤, 국민연금사보 기고 - 시인 권정희>


사람들 웅성웅성 모여있는 아파트 단지 지상 주차장이다.

언성 놓여 싸우는 305호 아줌마와 406호 아저씨,

“아줌마, 차를 앞에다 세워놓고 연락처도 안 적어 놓으시면 어쩌냐고요”

악다구니 치는 아저씨,

“까먹을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예요. 버스나 지하철을 뻘로 있어요? 하루 정도 그렇게 다녀도 건강에 좋겠구먼”

“뭐라고요? 아저씨, 지금 말 다했어요?”

“아저씨라니? 지금 누구 보고 아저씨라는 거야. 이 아줌마가. “

“어르신들!”

순간, 이들 사이에 띄어드는 누군가가 있었다. 20대 후반의 남자,

“아,,, 싸우시는 것까지는 좋은데요. 조기 조기 조 밖에 나가서 싸우시면 안될까요? ”

사람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그 남자 계속 말을 잇는다

“지금 경비실 인터폰이 불납니다. 불”

406호 아저씨 멀뚱멀뚱 바라보다 젊은 남자를 보고 묻는다.

“자네 뭔가? 뭔데 싸우는데 끼어들어 이래라 저래란 가?” 하는데, 젊은 남자 씩 웃으며 말한다.

“저, 이 아파트 새로 온 경빈 데요. 공경비”

사람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의아하다. 무슨 경비원이 저렇게 젊어하는 표정인데, 공경비 씩 웃으며,

“부탁드립니다. 이웃끼리 상부상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아파트 단지 게시판 안에 조그만 안내문이 나붙었다. 사람들 지나가면서 하나씩 훑고 지나가는데,

“발소리 쿵쿵쿵 안 나게- 잠시만 생각해 주세요. 당신이 잠시 생각하는 순간 장미 아파트가 새로워집니다”

하는 글과 함께 이쁜 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엄마 손을 잡고 게시판 앞을 지나던 초등학생 민아가 잠시 엄마 손을 잡고 멈춰서 그림을 보고 피식 웃는다.

“엄마 저거 되게 웃기다”

민아엄마는 잠시 멈춰서 게시판의 글을 쭉 훑는다.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윗집에서 나는 발소리에 신경질이 나 경비실에 대고 화를 내지 않았던가? 이내 피식 웃음이 나와 버리는 민아 엄마, 한 번도 게시판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 민아엄마는 게시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 옆에 붙여진 게시문에는 커다란 쓰레기봉투가 그려져 있었고

“쓰레기에도 인격이 있습니다. 쓰레기가 버려지는 순간, 당신의 인격도 버려집니다. 분리수거해주세요. 제발”

하는 우스개 담긴 게시문이 붙어 있었다. 한분에 들어오는 게시문의 글귀를 되새기면서 민아엄마는 민아손을 잡고 아파트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뭐 하는 사람이래?”

“젊은 사람이 할 게 없어 무슨 아파트 경비원이래? 경비원은 정규직도 아니잖아”

“내가 들은 얘긴데 그 젊은 경비원이 우리 아파트 시공회사 사장 아들인데, 하여도 말썽을 피워서 여기다 박아놨다던데?”

“아니야, 내가 들은 확실한 정보에 의하면 사법고시에 패스해서 곧 연수원에 들어간다던데?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래”

“뭐 사법고시? 그럼 곧 검사나 판사가 된다는 거 아녀?”

주차장에서 305호 아줌마와 시비를 붙었던 406호 아저씨의 눈이 동그래진다.

406호 아저씨 왠지 그때 그 일이 자꾸만 맘에 걸리고,

친해지기라도 하면 혹시 나중에 법적으로 불리한 일에 자문을 구할 수 있을걸 그랬다는 그런 생각이 한편으로 들기도 했다.

그렇게 단지 내에 공경비의 소문이 꼬리에 고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던 중 경비실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공경비 힘들지? 내 박카스 한 박스 사 왔는데 마시면서 쉬엄쉬엄 해”

“공경비, 우리 집에서 마침 빈대떡을 부쳤는데, 너무 많이 해서,”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공경비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공경비 애인 있어?”

701호 아줌마가 은근슬쩍 경비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공경비를 향해 말을 건다.

“아직 없는데요”

아줌마의 눈이 금세 커지고, 코가 벌룸벌룸 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우리 딸이랑 소개팅 한번 할래?”

“소개팅요?”

“지금은 나가서 혼자 살고 있는데, 무역회사에서 비서일을 하고 있거든? 공경비가 올해 스물아홉이라고 했지?

우리 딸이 스물일곱이니까 딱 좋네? 응 한번 해라”

“아니에요. 소개팅은 무슨, 제 주제에...”

“공경비 주제가 어때서? 한번 해라 해라”

그렇게 등에 떠밀려 나가게 된 소개팅 자리, 공경비는 떨리는 마음으로 **호텔 커피숍에 앉아 700호 아줌마의 딸을 기다렸다.

“저기, 혹시....”

공경비에게 말을 거는 아가씨, 공경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 같은 느낌의 아가씨가 아닌가?

701호의 아줌마 딸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쁘고 날씬하기까지 했다.


“연수 끝내시면 뭘 하실 생각이세요?”

“네?”

공경비는 아가씨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가씨 싱끗 웃으며,

“연수 끝내시면 뭘 할 거다 결정하신 거 있으실 거 아니에요?”

“연수라뇨?”

공경비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돼묻는데, 표정 짐짓 굳어지는 아가씨,

“연수원에 계신다면서요? 사법고시 패스하시고?”

“네?”

모르겠는 그녀의 질문에 공경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잘못된 정보로 공경비를 만나러 나온 것이 분명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씁쓸한 미소를 감출 길 없는 공경비, 오는 길, 향기로운 꽃 가득한 꽃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잠시 꽃을 바라보다 희미한 미소를 띠는 공경비, 장미꽃 한아름을 사들고 어디론가 향한다.

“돈 아깝게 이런 건 뭐 하러 사들고 와? 경비 생활은 할만하니?”

병원에 누워계신 외조부의 머리맡에 장미를 놓고 옆에 앉는 공경비

“경비일이 그렇죠 뭐”

“너도 곧 좋은 일자리를 찾아야 할 텐데..... 그래도 소장이 칭찬하던데? 아파트 일에 열심히라고, 넌 뭐든지 잘할 거야,”

외조부의 손을 꼭 잡는 공경비,

“그래도 나 가면 내 자린 돌려줘야 해 “

외조부의 가벼운 농담이 무거운 공경비 마음을 가볍게 해 주고 있었다.


“뭐 하나? 공경비?”

하루 종일 뭔가를 열심히 아파트 주변에 심는 공경비를 보며 406호 아저씨 말을 붙여본다.

“장미 좀 심어 보려고요”

“장미?”

“네, 이름이 장미 아파튼데, 장미가 한송이도 없어서요.”

“이따가 자네 시간 좀 있나? 나랑 소주나 한잔하지”

공경비 영문도 모른 채 406호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삼겹살 집에 앉았는데...

잠시 눈치 보던 아저씨 느릿느릿 말을 시작한다.

“저기 공경비, 내가 억울한 일이 하나 있거든, 근데, 고소를 할래도 변호 비도 만만치 않고 해서, 공경비한테 상담 좀....”

“......”


탐스럽게 핀 장미가 장미아파트를 감싸고, 그렇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장미는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공경비가 떠난 자리, 비록 아파트 사람들에게 좋은 신랑감이 아니어도, 좋은 변호사가 아니어도,

공경비의 장미는 장미 아파트 사람들에게 장미향을 선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