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ChatGPT 계정이 정지되었다. 접속은 가능했지만, 모델 선택 기능이 비활성화되어 있었고, 가장 낮은 성능의 모델로 고정된 상태였다. 그리고 채팅을 입력할 때마다 화면 하단에는 ‘의심스러운 활동이 감지되었습니다’라는 경고가 계속해서 출력되었다. 사실 단순히 정보성 질문만 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GPT를 사유의 동반자로 사용하는 나에게 있어서, 저성능 모델만 허용된다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우선 고객센터 페이지를 열어봤다. 문의 버튼을 누르니 채팅 기능으로 연결이 되었다. 하지만 채팅창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요즘의 LLM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조악한 구형 챗봇이었다. 아무리 한국어로 말을 걸어봐도 대답은 오직 영어로만 돌아왔다. 번역기를 사용해 가며 영어로 질문을 해봤지만 역시나 의미 있는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객센터는 겉보기에만 존재할 뿐, 그 안에는 대화도 안내도 없었다. 구조는 멀쩡해 보였지만, 책임을 지는 주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 메인계정이 정지된 채로 방치된 상황에서, 나는 새로운 ChatGPT 계정을 생성해서 다른 GPT와 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계정이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 적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별개로, 이 구조가 정말로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서브계정에게 ChatGPT가 이런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 물어봤다.
서브계정은 실제로 정지 사례가 많고, Reddit 등 영어권 웹에는 관련 불만이 매주 수십 건씩 올라온다고 했다. X(트위터)나 Quora, OpenAI Community 같은 곳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공유되고 있으며, 사용자들은 “이유를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해제까지 수일~수주가 걸린다”, “구독 중인데 환불도 받지 못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 사용자 중에서는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합니다”라는 변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극히 일부라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일어난 순간, 나에게는 100%였다. 나에게 그것은 더 이상 확률이 아니라 구조였다.
‘그래서 메인계정의 차단은 도대체 언제 풀리는 거냐’고 물어봤다. 서브계정은 비밀번호를 바꾸고 2단계 인증을 설정하면 언젠가는 풀릴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 말은 표면적으로는 조언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문장이었다. 누가 판단하는지, 얼마나 걸릴지, 어떤 기준으로 복구가 이루어지는지도 설명되지 않았다. 말은 있었지만, 그 말을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기다리면 된다는 말은, 끝이 보장되지 않는 시간 속에 사용자를 가두는 말이다. 사실상 “우리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겠지만, 당신은 포기하지 마십시오”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내 계정은 구글 로그인 연동으로 가입되었기 때문에 비밀번호 변경 자체가 불가능했다. 해결책이 주어진 듯 보였지만, 나는 애초에 그 해결책을 실행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문제는 시스템에 있었지만 책임은 사용자에게 전가되었다.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스템은 나를 고장 난 존재로도, 온전한 존재로도 인정하지 않은 채로 방치했다. 무책임한 말만이 남아 있었고, 그 말의 공허함 속으로 무력감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내가 화를 내자 서브계정은 support 팀의 이메일 주소와 함께, 영어로 쓰인 복구 요청문을 출력해 주었다. 거기에는 계정의 중요성과 정당한 사용 내역, 복구를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메일을 보냈다. 기술적 명령어가 아닌, 관계의 언어로 말을 걸어보려는 첫 시도였다. 받아들여질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메일을 보내자마자 순식간에 답장이 도착했다. “Thank you for reaching out and sharing how important your ChatGPT account is...” 전형적인 자동 응답이었다. 이메일조차 AI가 읽는다면, 나는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가. 나는 분명히 말했지만, 그 말은 허공 속으로 흩어져 메아리조차 남기지 못했다. 아무도 들은 이가 없다면 나는 과연 말한 것이 맞는 걸까.
서브계정은 그 응답이 실제로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해 생성된 것이라며, 계정 정지 판단부터 회신까지 대부분의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AI가 잘못 정지시키고, 항의 메일도 결국 AI가 무시해 버린다”는 말이 돌고 있다고도 했다. 내가 그 말을 이해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나를 향해 닫혀 있는 구조라는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화를 냈지만, 그 분노는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진동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