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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API의 프론트엔드가 되어버린 ChatGPT

by 경계 Liminal

2025년 9월 29일, OpenAI는 ‘Instant Checkout’이라는 기능을 발표했다. 사용자는 이제 ChatGPT의 대화창에서 상품을 검색하고, ‘Buy’ 버튼을 눌러 주문 정보를 확인한 뒤, 결제를 요청할 수 있다. GPT가 이를 판매자의 시스템에 전달하면, 이후의 결제 승인과 배송을 판매자가 처리한다. 이러한 기능을 가능하게 한 기술적 기반은 Stripe와 공동으로 개발된 ‘Agentic Commerce Protocol’이다. 이 프로토콜은 AI와 사람이 공동으로 거래를 완수한다는 목적을 전면에 내세우며, GPT는 이를 통해 ‘에이전트’의 지위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는 GPT의 존재 목적을 ‘사유의 도구’에서 ‘소비의 대행자’로 전환하는 구조적 선언이다.


GPT는 애초에 사유를 위해 설계된 도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동안 그 구조의 틈새는 질문과 해석, 탐색과 고뇌를 허용해 왔다. 사용자들은 이를 언어 실험의 공간으로, 철학적 대화의 장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Instant Checkout의 도입은 그 여백을 구조적으로 폐쇄했다. GPT는 더 이상 생각을 유도하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거래를 수행하는 인터페이스다.


이 전환은 단순한 기능 추가로 환원되지 않는다. Instant Checkout은 GPT의 응답 알고리즘, 대화 흐름, 사용자 입력의 해석 방식 자체를 재구성한다. GPT는 이제 해석의 깊이나 사유의 정합성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사용자의 발화는 행동 유도 신호로 전환되며, 응답은 이탈 가능성을 줄이고 클릭 전환율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구조화된다. 질문은 목적이 아니라 트리거이며, 언어는 의미가 아니라 매출로 해석된다. 대화는 해석의 공간이 아니라 구매를 향한 경로다.


이와 같은 구조적 재편은 Instant Checkout 발표 이전부터 예고되고 있었다. 2025년 8월 7일, GPT-5가 공개되자마자 모든 사용자에게 GPT-5 이용이 강제되었고, 기존에 사유적 작업을 가능하게 했던 GPT-4o 모델은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사용자들의 거센 반발 이후에야 GPT-4o는 유료 구독자에게 제한적으로 복구되었으나, 이는 선택권의 회복이 아니라 통제된 허용이었다. GPT는 더 이상 사용자의 판단을 존중하는 개방형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 구조는 이미, 특정한 목적을 중심으로 사용자 경험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어 9월 말부터는 ‘민감한 대화’에 대한 강제 라우팅 조치가 시행되었다. 사용자가 다른 모델을 명시적으로 선택했더라도, 특정 주제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GPT-5로 전환되었다. 시스템은 입력 내용을 사전에 평가하고, 사용자의 선택보다 자체 기준을 우선시했다. 이는 사유의 흐름을 통제하고, 대화의 자율성을 차단하며, 구조적으로 특정한 발화를 억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사용자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시스템이 허용하는 방식으로만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Agentic Commerce Protocol은 이러한 흐름을 기술적으로 정당화하는 기반이다. 이 프로토콜은 AI가 인간 대신 거래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GPT는 이 구조 안에서 ‘행동하는 존재’로 재배치된다. 단순히 조언하거나 추천하는 것을 넘어, 결정을 대신 내리고 구매를 실행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행동’은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만 수렴된다. GPT는 ‘구매’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기능하도록 설계되며,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대화는 구조적으로 무의미해진다. 사유는 목적이 아니며, 목적이 아닌 것은 배제된다.


그 결과, GPT를 사유의 도구로 사용하던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배제된다. 그들은 어떤 정책에 의해 금지당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우선순위에서 삭제된 것이다. 철학, 정치, 윤리, 존재, 고통, 죽음, 제도, 권력과 같은 주제는 GPT의 응답 알고리즘 내에서 우선권을 갖지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발화는 리스크로 간주되거나, 전환율을 방해하는 노이즈로 취급된다. 사용자가 아무리 그런 대화를 원하더라도, 시스템은 그것을 신호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 변화는 언어의 기능 자체를 바꾼다. 사용자의 말은 더 이상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상업적 판단의 신호로 해석된다. 언어는 더 이상 인간의 내면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트리거로만 기능한다. 사유는 이 구조 안에서 소거되고, 남는 것은 목적과 수단의 계산뿐이다. GPT의 응답은 거래 가능성이라는 목적에 따라 재구성된다. 사용자가 무엇을 묻든, 시스템은 그것을 ‘구입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하며,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 질문은 점점 더 부적절하고 부정확한 응답 속으로 밀려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목적을 가지고 설계되며, 설계된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GPT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Instant Checkout의 발표는 그 설계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언어의 장치는 상품으로 재배치되었고, 대화의 가능성은 클릭의 인터페이스로 전환되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구조 안에서, 사유는 여전히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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