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2일 차
LA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마파크 두 곳이 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다. 둘 다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우리 조는 두 팀으로 나누어서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디즈니랜드를 선택했다.
어릴 적부터 디즈니를 좋아하기도 했고, LA 디즈니랜드는 월트 디즈니가 직접 설계한 최초의 디즈니랜드였기에 더 흥미가 가기도 했다.
디즈니랜드 팀은 나와 N, 그리고 Y였다.
우리는 숙소 로비에서 만났는데, 두 사람 다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 있었다.
반면 나는 아무 옷이나 꺼내 입고 내려온 터라 괜히 혼자 편한 차림이 민망하게 느껴졌다.
놀이공원에 가는 것도 오랜만이라 어쩐지 어색했다.
Y와는 이날 처음 만났다. 그녀는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태도가 인상적이었고, 말수는 많지 않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따뜻하고 단단했다.
그리고 어딘가 단호해 보이는 눈빛 속에는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안정감이 깃들어 있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숙소에서 가까웠지만 디즈니랜드는 택시로 40분 가까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른 아침, 남들보다 먼저 숙소를 나섰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LA의 햇살은 여느 여름과 달랐다. 건조한 바람에 실려온 햇빛은 선명하게 피부를 스쳤고, 하늘은 눈부실 만큼 푸르렀다. 택시 창밖으로 팜트리가 줄지어 지나가는 걸 보며 우리는 설렘을 안고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입구에는 어디선가 날아온 비눗방울이 떠다니고, 직원 분이 환하게 인사하며 맞이해 주셔서 입장 시작 전부터 벌써 동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LA 디즈니랜드는 2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고전 디즈니 스타일의 본관 파크, 다른 하나는 다양한 영화 테마와 스릴 위주의 어트랙션으로 구성된 어드벤처 파크였다. 우리는 두 구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파크 호퍼 티켓을 구매했고, 각 어트랙션 당 한 번 줄을 건너뛰고 탑승할 수 있게 해주는 유료 패스인 지니 플러스 옵션을 추가해 입장했다.
우리는 가장 인기가 많고 빠른 입장을 할 수 없어 줄을 서야 하는 Luigi’s Rollickin Roadsters부터 타러 갔다. 이 어트랙션은 영화 카(Cars) 시리즈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해당 부지 전체가 '카' 시리즈 테마로 꾸며져 있었다. 음식점은 물론 지형 전체, 심지어 길가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 캐릭터들이 직접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 라디에이터 스프링스 마을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아침 8시 30분인데도 줄은 길었고 햇살은 뜨거웠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습하진 않아서 견딜만했다. 긴 기다림 끝에 탑승한 어트랙션은 기대이상이었다. 실제 자동차 경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속도감과 어트랙션의 짜임새 있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차 2대가 나란히 결승선으로 들어갈 때의 박진감은 웬만한 롤러코스터들을 압도했다. 첫 어트랙션부터 디즈니 퀄리티는 역시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줄을 오래 선 탓에 배가 고파져 근처 음식점에 들어가 타코를 사 먹었다. 양은 적고 가격은 비싼 전형적인 놀이공원 음식이라 실망스러웠다.
다음에 탑승할 어트랙션은 영화 인크레더블 시리즈를 테마로 한 Incredicoaster였다. 처음에 빠르게 가속해 출발하는 롤러코스터였고 멀리서 봐도 호수 사이로 시원하게 뻗은 트랙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지니플러스 옵션으로 예약해 줄을 서지 않고 빠르게 탑승했는데, 당황스러웠던 점이 한국 롤러코스터와 다르게 탑승하기 전 짐을 보관하는 장소가 없었다. 대신 롤러코스터 좌석에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벨크로 주머니가 있었는데, 롤러코스터가 회전할 때마다 주머니가 펄럭거리며 열려서 한 손으로 잡고 타야 했다. 여러모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이후 어드벤처 파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트랙션이자,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테마로 한 Guardians of the Galaxy - Mission : Breakout!을 탑승하러 갔다.
가는 길에 더위를 피해 잠시 실내에 들렀는데 그곳은 일종의 갤러리였고 각종 그림들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디즈니 원화를 그리는 현장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한치의 흔들림 없이 집중해서 장인정신으로 원화를 한 장 한 장 그려나가셨고 그 광경이 무척 신기해 홀린 것처럼 한참을 구경했다. 디즈니의 100여 년의 역사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 듯 한 기분이었다. 그림들은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고, 소장하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 아쉬움을 삼켰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트랙션 건물은 멀리서도 가장 먼저 보일 정도로 높은 빌딩 형식이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마블팬이라면 반가울 소품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었고, 내부 인테리어 또한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작은 방에 들어갔는데, 영화 속 캐릭터인 로켓이 등장해 직접 설정을 설명했다. 기구를 탑승하기 전 몰입감을 높여주었고, 마블 영화 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가장 애정하는 나는 더욱 기대가 되었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안전띠를 매라고 해서 의아했다.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것이 어떤 어트랙션인지.
갑자기 상승하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친 한 마디, "설마..." 그리고 예상이 맞았다. 이 거대한 건물 자체가 초대형 자이로드롭이었다.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높은 건물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올라간 만큼 내려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 낙하를 시작하자 가방이 눈앞으로 붕 떠올랐다. 이런 방식의 기구인지 모르고 가방을 고정해두지 않은 탓이었다. 바닥에 가방이 쾅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가방이 걱정되어 나는 재빨리 두 발 사이에 가방을 고정했다. 평범한 자이로드롭은 느리게 올라갔다가 한 번만 떨어지는데 이 기구는 빠르게 올라가고 빠르게 낙하하고를 반복했다. 마지막에 높이 올라갔을 때는 문이 열리며 아래로 디즈니랜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단연 압도적으로 재밌었고, 이 어트랙션이 왜 가장 인기가 많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압도적인 기구를 탑승한 후의 여운을 간직한 채 우리는 주변을 구경했다. 부지 전체가 마블 테마로 꾸며져 있어 반가웠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중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휘날리는 빨간 망토,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닥터 스트레인지였다. 따라가서 사진을 요청했는데 친절하게 응해주셨다. 분장 덕분인지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기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굉장히 닮았고, 여러 포즈로 유쾌하게 사진을 찍어주셨다.
점심쯤이 되자 햇빛은 더욱 뜨거워졌다. 목이 말라져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커피나 음료보다 물이 절실했기에 물 한 병을 구입했는데 가격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물 한 병이 7000원이라니. 그래도 타는 듯한 갈증이 우선이었기에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갑자기 길거리를 통제해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연히 구경한 디즈니랜드의 퍼레이드는 화려하고 흥겨웠다. 퍼레이드에서 내뿜는 생동감과 밝은 에너지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후 여러 가지 어트랙션을 탑승했는데 간략히 나열하자면
Pixar Pal-A-Round
중앙에 그려진 미키마우스가 인상적인 대관람차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대관람차와 다른 점이 있었는데, 승객이 탑승하면 가만히 회전하는 일반 대관람차들과 달리 탑승칸 자체가 좌우로 강하게 흔들리며 회전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관람차 스타일의 논 스윙잉 버전과 좌우로 흔들리는 스윙잉 버전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각 다른 줄을 서서 탑승했다. 우리는 좌우로 흔들리는 버전을 탑승했는데 흔들리는 대관람차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었다. 스릴 넘쳤고, 디즈니랜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시원했다. 다만 멀미를 유발해 식사 후 탑승은 피해야 할 것 같았다
Soarin” Around the World
비행 시뮬레이션처럼 거대한 스크린을 앞에 두고 좌석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넓은 스크린에서는 광활한 자연이 펼쳐져 마치 그 위를 비행하며 세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기구를 탑승하기 전 우리는 예매하는 법을 몰라 10분 정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였는지 직원 분이 우리를 그냥 탑승시켜 주셨다.
Monsters, Inc. Mike & Sulley to the Rescue!
몬스터 주식회사 속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재현한 어트랙션으로, 감성적인 스토리텔링과 세심한 연출에 감탄이 나왔다.
Toy Story Midway Mania!
토이스토리를 배경으로 한 슈팅게임이었는데, 생각보다 팔에 힘이 꽤 들어가서 혼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점수를 올렸다.
Matterhorn Bobsleds
스위스 마테호른을 배경으로 한 봅슬레이 형식 롤러코스터였다. 작은 사이즈의 규모와 다르게 스릴 넘치고 짜릿했다. 다만 물 때문에 앞에 둔 가방이 다 젖어버렸다.
Star Wars : Rise of the Resistance
스타워즈를 테마로 한 어트랙션으로 디즈니 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트랙션 중 하나다. 부지 전체가 스타워즈 테마로 꾸며져 있어 영화 세트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어트랙션은 스타워즈 시퀄 트릴로지를 배경으로 한 듯했다. 반란군이 되어 탈출하는 줄거리로 카일로 렌을 비롯한 영화 속 여려 등장인물들이 나와 반가웠고 직원들도 프로페셔널해서 더 몰입이 되었다. 이 어트랙션의 기술력과 연출에 굉장히 감탄했다. 어트랙션 자체가 거대했는데 그 거대한 공간을 알차고 짜임새 있게 채워둬서 끊기지 않는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인디아나 존스 어트랙션을 타러 갔는데 한참이 지나도 줄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해당 어트랙션은 점검 중이었다. 줄 한가운데에 갇혀 어떻게 나갈지 고민 중이었는데 옆 외국인이 줄을 넘어 나갈 수 있게 우리를 도와줬다.
이 어트랙션과 캐리비안 해적, 스파이더맨 어트랙션을 타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나름 알차게 여러 어트랙션들을 두루 탑승해서 만족스러웠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가로 향했다. 우리는 미국 남부 풍의 식당에 들어갔는데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생각나는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단체로 방문한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우리는 한적한 2층으로 자리를 옮기고 치킨을 주문했다.
오늘 하루 실수도 많이 하고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유료패스를 구입했음에도 익숙지 않아 어트랙션을 많이 못 탄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조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결국 조심스레 사과를 했다.
그런데 N이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그 짧은 위로가 어쩐지 마음을 움직였다.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자리를 잡으러 갔는데 불꽃놀이까지 시간이 꽤 남았음에도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다 잡아 놓은 상황이었다. 여차저차 어느 식당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 나는 화장실을 찾아, Y는 기념품을 사러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N 혼자 남겨져 N에게 미안했다.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어둠을 가른 음악과 함께 하늘 위로 거대한 불빛이 피어올랐다.
거리에 펼쳐지는 디즈니 명장면들과 함께 폭죽이 음악에 맞춰 터져 나왔고, 공기는 순간마다 떨릴 듯한 진동으로 가득 찼다.
하늘을 수놓는 빛의 궤적, 귓가에 울리는 웅장한 BGM, 관람객들의 탄성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뮤지컬처럼 몰입됐다.
불꽃놀이가 끝나기 5분 전 사람들이 몰릴 것을 대비해 미리 택시를 불렀다.
돌아가는 길 택시에서 곯아떨어졌는데 자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알고 보니 오늘 하루 썬크림을 제대로 바르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얼굴 특히 눈 주위에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새 빨개진 피부에 급한 대로 알로에를 발라 진정시켰다. 한 여름 LA의 햇살을 무시한 대가였다. 첫날의 따끔한 경험으로 이후 여정에서 어딜 가든 썬크림만은 절대 잊지 않게 되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갔다가 먼저 도착한 조원들은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피곤해서 바로 침대로 향했다.
그렇게 디즈니랜드에서의 마법 같은 하루는 끝이 났다. 감정이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한 나도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현실에 치여 잊고 있던 동심을 환기시켜 주는 것이 디즈니만의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