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이 일하는 호텔은 하나의 마을과도 같다. 은행, 우체국, 헤어숍, 수영장, 짐, 각종 레스토랑, 마트와 카페 그리고 주얼리, 옷가게, 서점까지 없는 게 없으니 말이다. 직원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의무실이 있고 호텔 내부에는 인터내셔널 유치원과 놀이터가 있다. 이만하면 호텔 안에서 거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해인은 호텔 직원 중 유일한 외국인 지배인으로 호텔 레지던스에 거주하며 호텔의 거의 모든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해인은 생각했다. 꿈에 그리던 직장이 아니었던가.
오늘 아침 해인은 호텔 베이커리의 햄앤치즈 크루아상과 커피를 들고 출근했다. 햄앤치즈 크루아상은 호텔 베이커리 최고 인기 메뉴로 바나나 케이크와 함께 해인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이기도 하다. 부드럽게 벌어진 크루아상 사이로 고소한 치즈와 짭조름한 햄, 여기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곁들이면 해인은 전장에 나갈 준비라도 된 듯 하루를 버틸 용기가 나곤 한다.
호텔리어 옷에서는 특유의 친절한 향기가 난다. 어릴 적 옆집 사는 예쁜 언니에게서 나던 냄새와도 같다. 가슴 언저리의 금빛 배지에는 해인의 영어 이름이 곱게 새겨져 있다. 이어 해인은 무기를 장착한 여전사처럼 로비로 또깍또깍 걷는다. 오늘도 해인의 일상은 그렇게 시작된다.